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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태극전사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메달의 색깔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태극마크의 무게감에서도 자유롭다. 경기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고, 경쟁을 즐긴다. 승부가 끝나면 라이벌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환하게 웃으며 함께 '셀피'도 찍는다. 자신의 실수를 먼저 인정하는 '쿨함'마저 갖췄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포착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의 새로운 트렌드다. MZ세대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메달 색깔보다 중요한 건 노력한 나 자신
하지만 2000년대에 출생한 'MZ세대'들이 중심이 된 이번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은 이런 무거운 목표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선수들은 비록 메달권이 아니더라도 후련한 듯한 표정으로 대회에 임한 소감과 앞으로의 목표를 밝혔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7위를 차지한 김민선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펼쳐 만족스럽다"고 했다.
또한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동안 쏟아부었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환하게 웃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계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한국 대표팀은 시상식 무대를 하나의 축제 처럼 즐겼다.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 동메달의 중국 선수들과 함께 시상대에서 번갈아가며 셀피를 찍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다 못한 진행요원이 공식 행사진행 안내에 나설 정도로 시상식 세리머니에 '진심'이었다.
이들이 이처럼 온전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던 것은 그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와의 경쟁이나 평가보다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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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의 올림픽은 종종 '내셔널리즘'의 경쟁 무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가슴에 달린 국기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내달렸다. 심할 경우 '국가간의 대리전쟁'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얽혀있을 경우 더욱 심했다. 한국과 일본 처럼 말이다. 선수들도 이런 경직된 분위기에 휩쓸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가라는 거대담론에 휩쓸리는 대신, 자기 자신과의 싸움, 라이벌과의 선의의 경쟁, 그리고 스포츠맨십을 더 앞서 생각하고 있다. 이런 바뀐 트렌트는 대회 곳곳에서 포착됐다. 여자 컬링대표팀 '팀킴'의 경우 14일 '4강행의 운명'이 걸린 6차전에서 '한일전'을 치렀다. 일본 대표팀 '팀 후지사와'와 명승부 끝에 10대5로 승리했는데, 경기 이후 양팀의 스킵 김은정과 후지사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김은정은 "후지사와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스킵이다. 침착하게 팀을 리드한다"며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시했다. 후지사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황대헌은 500m 준결선 2조에서 자신과 충돌한 스티븐 뒤부아(캐나다)에게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쟁이 끝난 뒤에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를 언급했다. 과거 '승부'에만 집착했던 분위기에서는 나오기 힘든 장면이다. '사과하면 진다'는 주장을 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지금 MZ세대 대표팀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불문율에 신경쓰지 않는다. 승부는 치열하게 하되,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MZ세대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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