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로운 김예지 의원"함께사는 세상,체육도 '유니버설'해야죠"[진심인터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2-01-17 18:09 | 최종수정 2022-01-18 07:50


피아니스트 출신 시각장애 의원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 원내부대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안내견 조이와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

2020년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의원을 처음 보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조리 있고 기품 있게 피아노 건반 치듯 또박또박 폐부를 파고드는 질문에 피감기관들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속사포' 질의 때마다 책상 위 점자판을 피아노 속주하듯 유려하게 훑어내리는 손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안내견 조이의 이름을 딴 "김예지의 '조이'로운 하루"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됐다. 그녀는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굽이굽이 늘려쓰는 것만 같았다. 주요 뉴스를 눈 대신 귀로 듣는데, 외계어같은 체감 '200배속' 뉴스를 귀신같이 캐치해내는 모습이 마치 초능력자 같았다. 평생 깨어 있고자 단련된 손도, 귀도, 말도 빨랐다. 2020년 5월 초선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한 후 지난 1년 8개월간 무려 110건 법안을 발의하고, 이중 20건이 통과됐다. 활발한 연주도, 왕성한 의정활동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지난 12일 이른 아침, '반려견' 조이와 함께 씩씩하게 여의도 의원실로 출근하는 김예지 의원을 향해 물었다. "의원님, 무슨 운동 좋아하세요?"


피아니스트 출신 시각장애 의원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 원내부대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응했다. 전국장애인동계체전에서 입상한 상장을 보여주고 있는 김 의원.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01.12/

피아니스트 출신 시각장애 의원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 원내부대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응했다.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수상한 상장과 메달.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01.12/
"체육도 '유니버설'해야 한다"

'의원님'은 장애인동계체전 메달리스트였다. 텐덤바이크 사이클 선수로 하계체전에 출전했고, 2020년 동계체전에선 바이애슬론 동메달, 크로스컨트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했다. 자선마라톤도 출전하고 했어서, 새로 체전 종목이 된 철인 3종에도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국회에 들어오는 바람에…"라며 미소 지었다.

초중교 12년을 보낸 서울국립맹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대한 질문엔 "암담하다"며 웃었다. "국민체조와 골볼 같은 구기 종목 몇 개를 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장애 당사자만큼 장애인체육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교육열 높은 외할머니 아래 자란 김 의원은 그래도 어릴 때 '사교육'으로 수영, 스키를 마스터했다. "초등학교 3~6학년 때 수영 배우러 할머니와 종로에서 상일동까지 2시간을 오갔다"는 무용담을 전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시설, 김 의원은 국회 입성 첫해부터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새해, 장애인스포츠강좌이용권 이용대상을 만 19~64세 전장애인으로 확대, 40억2000만원의 예산을 증액한 정책은 김 의원의 경험과 열정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김 의원은 "체육교사들이 '장애'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장애학생의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운동은 일찍 시작할수록 역량이 강화된다. 장애인학생체육은 학교체육의 사각지대에 있다. 생존수영도 초등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장애학생들이 생존수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현황 파악이 안된다. 특수학교든 통합교육이든 비장애인이 누리는 학교체육의 혜택은 장애인도 똑같이 누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의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고 같이 사는 세상이다. '통합교육'이라는 말도 어찌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미 나눈 말"이라면서 "결국은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교육이어야 한다. 성별, 연령, 국적,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시대정신이듯, 학교체육도 '유니버설'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생각, 정보 접근성까지 모든 면에서 '유니버설'해야 한다. 체육교육 분야에서도 '유니버설'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제공=김예지 의원실
1년8개월간 110건의 법안 발의-20건 통과, 가장 보람 있는 일은?


'110건의 법안 발의, 20건 통과', 열혈 초선의원의 놀라운 실적을 수치로 언급하자 김 의원은 "건수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기본'으로 답했다. 1년8개월 의정생활 중 'UN장애인권리협약 의정서 비준촉구 결의안' 통과는 가장 보람된 일이다. "263만 장애인들이 10년 넘도록 바라고 또 바라던 일. 국회 입성 전에 꼭 이뤄보겠다 했던 일"이라고 돌아봤다. "UN장애인권리협약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선택의정서가 비준돼야 한다. 국회 본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 이제 고지가 바로 눈앞"이라며 웃었다. 정부가 제출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심사, 본회의 의결을 거친 후 공포될 예정. 김 의원은 "장애인 인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의식 수준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끝이 아니고 또다른 시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의원은 장애인-비장애인 스포츠 관련 법 정비에도 진심을 다했다. 지난해 말 장애인스포츠 지원법을 공동발의했고 토론회도 공동주최했다.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 학교체육진흥법 개정안 등 4건의 체육관련 법안이 본의회를 통과했다. 프로스포츠단이 재난으로 정상적 경기를 열지 못할 경우 경기장 이용료를 감면토록 하고, 지자체가 공유재산 중 행정재산뿐 아니라 일반재산 대부를 통한 수익사업이 가능하도록 한 '스포츠산업 일부 개정안' 통과는 코로나 장기화로 신음하던 프로스포츠 현장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김 의원의 체육 정책은 이렇듯 늘 현장에 맞닿아 있다. 지난해 12월, 대한체육회의 학교체육진흥포럼, '학생선수 주중대회 금지'의 문제점을 선수,학부모 눈높이에서 조목조목 짚어내는 김 의원의 통찰력에 현장 체육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국회의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현장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늘 더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녀는 "예체능, 음악과 체육은 비슷한 것이 있다"고 했다. "부단히 연습, 단련해야 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학생선수들의 문제는, 내가 살아온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학생 시절 끝없이 부족함을 느꼈던 바로 '나의 이야기'"라며 뜨거운 공감의 이유를 전했다.


사진제공=김예지 의원실

피아니스트 출신 시각장애 의원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 원내부대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도중 의원실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는 안내견 조이.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01.12/

피아니스트 출신 시각장애 의원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 원내부대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의원실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안내견 조이.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01.12/
더 낮은 현장, 마이너 중의 마이너를 위해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일 역시 더 낮은 '현장'을 향했다. "장애인 관련 정책 중에서도 더 주목받지 못하는 이슈들"을 이야기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 개정안'이 통과됐다. 많은 장애인들이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이뤄낸 일이지만 도입만이 능사는 아니다. 저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저상버스가 있어도 탈 수 없다. 유형별 장애를 배려한 좀더 세심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은 임기동안 논의 되지 않는 이슈, 큰소리가 나지 않지만 중요한 일들, 마이너 중의 마이너를 살피고 찾아내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 '사진 찍자!'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조이' 보좌관이 김 의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사진기자의 카메라 렌즈를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김 의원은 "조이는 저처럼 고집이 세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친구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사실 '관종'"이라더니 목소리를 바짝 낮췄다. "사실 길 안내보다 사진 찍기를 더 잘해요."

김 의원은 '조이'와 자신의 공통점도 귀띔했다. "저도 고집이 세서,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걸 많이 했어요. 피아노 하겠다 했을 때도 반대하셨죠. 살아남기 힘든 생태계라고. 정치하는 것도 원치 않으셨어요.남들처럼 안정적인 삶을 원하셨는데 말을 안들었죠"라며 웃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책임도 내가 지는 것니까요. 부모님껜 죄송해요"라더니 다음 도전에 대한 이야기에 이내 반색했다. 잠시 꿈꿨다는 철인 3종 이야기다. "전 도전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때 되면 연식은 좀 더 되겠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강하고 빠르고 '조이로운' 그녀와의 1시간 인터뷰는 너무 짧았다.
여의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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