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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보이콧!' 성난 선수들, IOC도 아베도 한발 물러섰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03-23 21:23


게티이미지코리아

"도쿄올림픽 연기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의지를 거듭 천명해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23일 오전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쿄올림픽 연기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면서 "만약 (예정된 스케줄대로 개최가) 곤란할 경우 선수 개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연기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기는 고려하지 않는다"던 강경 입장에서 선회한 일보 후퇴다. 이제서야 "선수 퍼스트" 코멘트가 나왔다.

IOC가 화상 집행위원회를 통해 올림픽 연기 결정 시한을 언급한 직후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IOC는 일단 '대회 취소'를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중이다. 대회 연기에 대한 4주의 결정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선수들에게 보내는 레터를 통해 4주 안에 연기와 관련한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도쿄조직위, 각 종목 국제연맹(IF), 각국 올림픽위원회(NOC) 등 올림픽 당사자들과 함께 세부논의를 시작했다. 올림픽 연기 시나리오를 포함해 논의해 4주 후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들이 4월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 전망하는 상황, 올림픽 연기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유로2020이 1년 연기되고, 세상의 모든 스포츠가 멈춰선 상황에서도 앵무새처럼 '정상개최' 의사를 고수하던 IOC와 일본이 '연기'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7~18일 IOC가 "4개월이나 남았다. 연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후 불거진 선수, 주요 국제연맹, 국가올림픽위원회의 극심한 반발이다. 올림픽의 꽃은 선수다. 선수 없는 올림픽은 없다. 바흐 위원장은 20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다른 시나리오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코멘트로 여지를 남겼지만, 집행위 전날인 22일 자국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올림픽은 축구경기처럼 다음 토요일로 뚝딱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을 취소하면 1만1000명의 선수들, 206개 올림픽위원회의 꿈이 깨진다"고 했다. 그러자 선수들의 꿈을 담보로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IOC의 모순'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일부 언론은 IOC를 향해 '바흐 위원장은 개최국 일본과 도쿄조직위 입장만 대변하느냐'며 독설을 퍼부었다.

21일 노르웨이올림픽위원회는 바흐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수영연맹, 미국육상연맹 선수들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IOC의 올림픽 강행 움직임에 반발했다. 세바스티안 코 세계육상연맹 회장도 바흐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7월 도쿄올림픽은 실현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뜻을 전했다. 23일 캐나다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가 전세계 NOC 가운데 최초로 도쿄에 선수들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호주, 뉴질랜드올림픽위원회도 동조했다. 독일올림픽 선수위원장인 펜싱 사브르 에이스 막스 하르퉁은 "지금은 훈련보다 더 옳은 일이 있다. 올림픽이 7월에 열린다면 나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한국, 중국을 비롯한 올림픽 출전선수들이 예선전 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올림픽의 주인공' 선수들이 거침없이 '보이콧'을 외치면서 '선수 퍼스트'를 주창해온 IOC가 위기에 봉착했다.

아베 총리 역시 IOC 및 주요국가 정상들과의 긴밀한 교감을 통해 연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연기론은 지난달 25일 딕 파운드 IOC 최장수 위원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시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후 지난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림픽 1년 연기'를 공개 제안하며 급부상했다. 올림픽 연기를 결정하는 데 '스포츠 최강' 경제대국 미국과 대통령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직접 통화로 의견을 나눴다. 16일 G7 화상회의에서도 올림픽 연기는 주관심사였다. 아베는 이례적으로 "취소나 무관중 경기가 아닌 '완전한 형태'"를 강조했다. 이미 이때 '연기'를 염두에 뒀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도쿄올림픽 성공을 후쿠시마 대지진 극복뿐 아니라 코로나 승리의 무대로 삼는 데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적 반발속에 올림픽을 강행하는 데 대한 심적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내년 9월30일 총리 임기가 만료되는 아베 총리에게 올림픽 취소가 아닌 '연기'는 현 위기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다.

한편 IOC는 23일 밤, 유승민 IOC위원을 비롯한 18명의 IOC선수위원들과 또 한 번의 화상회의를 갖는다. 전세계 선수들이 처한 상황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계획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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