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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함지뢰 영웅'하재헌 중사,장애인체전 조정 첫金 "패럴림픽 도전!"[현장인터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10-17 15:29



[미사리조정경기장=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잘했어! 우리 아들." "장하다!"

가을하늘이 유난히 높푸르던 17일 오전 미사리 조정경기장, 3번 뱃머리가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하재헌 예비역 중사(25·SH공사)의 아버지 하대용씨와 어머니 김문자씨가 손을 흔들며 뜨겁게 환호했다.

'목함 지뢰 영웅' 하 중사가 '장애인 조정 영웅'으로 거듭 난 순간이었다. 하재헌은 17일 오전 11시40분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펼쳐진 제39회 서울장애인전국체전 남자조정 PR1 개인전 1000m에서 감격의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PR1은 지체장애 등급 중 허리를 쓸 수 없는 가장 중증, 오로지 팔 힘만으로 노를 젓는 종목이다.

1사단 수색대 하사로 근무하던 스물한 살의 하재헌은 2015년 8월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 중 북한이 숨겨놓은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2016년 5월 수술후 재활 목적으로 시작한 조정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를 꿈꿨던 운동신경, 갑작스러운 사고와 19번의 전신마취에도 무너지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 등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모두 갖췄다.



하재헌은 올해 1월 전역 후 4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장애인조정선수단이 창단되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도쿄패럴림픽 출전, 패럴림픽 메달리스트를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올해 체전을 앞두고 하재헌은 이슈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1사단, 경기도 소속으로 체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첫 출전 때와는 달랐다. 북한이 도발한 지뢰 탓에 두 다리를 잃은 20대 청춘 하재헌에게 보훈처가 전상(전투중 부상)이 아닌 공상(업무수행중 부상) 판정을 내리며 국민적 비난이 빗발쳤다. 억울함을 호소한 국민청원엔 일주일만에 2만여 명이 동의를 눌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훈처에 재심을 지시했고, 2일 재심에서 '전상' 판정을 받았다. 지난 1일 국군의 날 공식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귀빈으로 초청된 '하 중사'를 포옹하며 아픔을 위로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10일 국감을 통해 "적이 설치한 폭발물 피해시 전상으로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장애인전국체전 개막식에서 '시련을 물리친 도전의 아이콘' 하 중사는 최종 성화 주자로 나섰다.

뜨거운 스포트라이트 속에 출전한 자신의 주종목, 부담감을 이겨냈다. 5분20초12, '디펜딩챔피언'이자 '평창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리스트' 이종경(6분08초44)을 48초 이상 앞서며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생애 첫 전국체전 금메달, 하 중사가 그제서야 비로소 미소를 지어보였다. "1등 못할까봐 걱정 했는데 1등 해서 한시름 놓았다"가 그의 금메달 일성이었다. "대회 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제, 오늘 기자분들도 많아서 부담감이 있었다. (이)종경이형이 비슷하게 따라와서 긴장했는데 차이가 벌어지면서 여유가 생겼다. 1등해서 다행이다"라며 웃었다. "대표팀에서 훈련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2000m을 하다보니 1000m는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북한과 패럴림픽에서 맞붙게 된다면' '북한과 단일팀이 된다면 '등의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며 일절 함구했다.


문 대통령과 하재헌 예비역 중사<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는 세상을 향한 통로다. 특히 불의의 사고로 어느날 갑자기 중도 장애를 마주하게 된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로 시작한 제2의 인생, 내년 도쿄패럴림픽 출전을 목표 삼은 하재헌은 "장애인 스포츠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하다. 많은 분들이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몸과 마음으로 체감한 장애인 체육의 가치를 설파했다. "친구들에게도 운동을 적극 권하고 있다. 갑자기 장애가 생기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운동하는 친구들은 굉장히 밝다. 방에만 있지 말았으면 한다. 조정뿐 아니라 탁구 등 몸에 무리 안가는 운동들이 정말 많다. 꼭 권하고 싶다."


조정의 매력을 묻자 표정이 환해졌다. "극한의 체력에서 오는 희열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조정은 기록 싸움이 아니라 순위 싸움이다. 그 레이스에서 1등 하더라도, 다음 시합에서는 또 얼마든지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종목이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하재헌은 지난 8월 장애인세계조정선수권에서 17위를 기록했다. 상위 7명에게 주어지는 도쿄패럴림픽 출전권을 놓쳤지만 첫 출전치고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소속팀 SH공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가대표 코치 출신 임명웅 감독의 지도속에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내년 4월 도쿄 출전권이 걸린 충주아시아선수권에서 1위에 오를 경우 도쿄행이 가능하다. 이달 충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은 패럴림픽 출전 가능성을 점쳐볼 기회다. 장재훈 대한장애인조정연맹 사무국장은 "쉽지는 않지만 현재의 상승세라며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올해 말부터 내년 2월까지 동계훈련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하재헌은 "다음주 충주 대회 준비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내년 4월 도쿄 출전권이 걸린 아시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꼭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애틋한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는 부모님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정을 많이 반대하셨는데, 지금은 열렬히 응원해주신다. 늘 제 걱정을 하신다. 더는 걱정을 얹어드리지 않을 거라 약속드린다. 열심히 하는 모습,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미사리조정경기장=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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