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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패밀리는 없었다.'
엄마는 한국 배드민턴 레전드이자 여자고교 코치이고, 아빠는 엄마의 라이벌 학교 감독이다. 이런 엄마, 아빠를 둔 세 딸은 모두 배드민턴 선수다. 그것도 (주니어)대표팀에서 촉망받는 유망주다.
제57회 전국 봄철배드민턴리그 중·고등부 대회가 열리는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는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에 오른 가족이 있다.
한국 배드민턴 여자복식의 레전드 정소영 전주성심여고 코치(52)의 식구들이다. 정 코치는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딴 뒤 은퇴했다. 2003년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93년 결혼한 남편 김범식 성지여고 감독 역시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다. 김 감독을 보좌하는 황혜영 코치는 정 코치가 바르셀로나 금메달을 일굴 때 단짝이었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있다. 첫째 김혜정(21·MG새마을금고)은 주니어대표를 거쳐 성인대표팀에서 복식 선수로 활약 중이다. 여고부 준결승이 열린 14일 싱가포르오픈에서 공희용과 함께 여자복식 결승에 출전해 준우승했다.
둘째 김소정(3학년)과 막내 김유정(1학년) 역시 주니어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둘은 엄마가 지도하는 전주성심여고의 간판 선수다. 이날 오후 여고부 준결승이 시작됐을 때 바로 옆 코트에서는 김범식 감독이 이끄는 성지여고가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해외 원정 나간 맏딸을 제외한 네 식구가 코트에 모인 것이다. 배드민턴 선수 출신 부부에 자녀 셋 모두가 부모의 뒤를 잇는, 한국 배드민턴에서 유일한 가족이다.
정 코치는 "일부러 시킨 것은 아니고 운동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제가 워낙 운동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정 코치가 경남 창원에서 생활체육 배드민턴 지도자로 활동할 때 엘리트팀이 있는 완월초등학교에 첫째를 입학시킨 게 시작이었다. 두 동생도 자연스럽게 같은 학교에 입학했고 언니가 운동하는 것을 보고 따라다니며 라켓을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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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은 덕분일까. 부모 모두 직장 생활에 바쁜 몸이라 따로 특별지도를 하지 않았지만 세 딸 모두 유망 선수로 쑥쑥 성장했다. 언니 뒤를 이어 주니어대표팀에 선발된 것까지 따라하고 있다.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소정, 유정이는 엄마를 따라 창원에서 전주로 전학갔는데 둘이 펄펄 날아다닌 덕분에 전주성심여고가 강팀 대열에 올랐다. 대신 아버지의 성지여고는 귀한 전력을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천여고와의 준결승에 둘째와 막내를 출전시키고 벤치코치를 맡은 정 코치는 사실 딸을 제자로 데리고 있으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단다. 혹시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언행을 조심하느라 다른 선수들 눈치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못한 잔소리를 집에서 하게 되고 때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되게 야단치기도 한다. 소정이와 유정이 역시 불편해 한다는 걸 잘 안다. "집에서는 엄마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을텐데…, 코치가 다른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듣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있다. 첫째 혜정이가 동생들과 만나면 "나도 고 2, 3학년때 엄마 말이 잔소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씀이더라"며 조언하는 모습을 볼 때다.
"1등만 살아남는 운동 선수를 괜히 시켰나 하는 후회도 들지만 지금까지 잘 해 온 것을 보면 보람도 느낀다"는 정 코치는 "엄마와 선생님을 겸하다보니 다른 선수들에게도 엄한 선생님보다 부모 마음으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등 장점도 많다"며 웃었다.
'딸들이 선수로서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정 코치는 "내 자식뿐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을 향한 바람이다. 성공에 앞서 인성이 더 중요하다. 인간적인 기본 자질을 갖춘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코치가 이끄는 전주성심여고는 이날 김천여고와의 준결승에서 막내 유정이가 1단식, 3복식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3대0 완승으로 결승에 안착했다. 전주성심여고는 작년 대회 챔피언 성일여고를 물리친 성지여고와 결승에서 만난다. 부부 지도자간 이색적인 결승전이다. 남고부는 당진정보고와 매원고의 결승 대결로 압축됐다.
여중부에서는 남일중A와 명인중A가 결승에 진출했고, 남중부는 진광중A와 완주중A가 우승기를 놓고 겨룬다.
김천=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제57회 봄철배드민턴리그 준결승(14일)
남고부
당진정보고 3-2 전주생명과학고
매원고 3-2 광명북고
여고부
전주성심여고A 3-0 김천여고A
성지여고 3-2 성일여고
남중부
진광중A 3-2 부산동중A
완주중A 3-2 화순중A
여중부
남일중A 3-1 언주중A
명인중A 3-1 남원주중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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