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빙상장 '누수소동' 동계체전 경기지연 문제만 아니다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9-02-21 06:00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팅 경기가 천장 누수로 인해 연기됐다. 사진은 물 고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태릉=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9.02.20/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팅 경기가 천장 누수로 인해 연기됐다. 사진은 물 고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태릉=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9.02.20/

동계올림픽을 치른 지 1년도 안된 대한한국 빙상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의 지붕 누수로 인해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일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첫날인 이날 오전 11시부터 태릉스케이트장에서 열기로 했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천장 누수로 인해 한동안 연기했다.

선수-학부모 등 목격자들에 따르면 천장 곳곳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자 대회 주최측은 빙판에 방수포를 덮었고, 관중석 의자는 흥건히 젖었다고 한다.

누수 원인은 태릉스케이트장의 노후로 지붕의 방수처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데다 전날 내린 눈이 녹으면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선수와 학부모들은 이날 소동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일시적인 경기 지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선수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초등∼일반부의 종목별 조별경기가 빽빽하게 열릴 예정이었다. 누수 연기로 새로 편성된 경기 일정은 오후 5시에 시작해 밤 11시30분에 끝나는 것으로 6시간 늦춰졌다. 이날 경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틀째인 21일에도 계속 다음 경기를 치러야 한다. 학부모들은 "밤 늦게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 컨디션 조절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서 "학생 선수에게 1년 한 번 열리는 체전은 성적에 따라 진학 문제가 좌지우지될 정도로 인생이 걸린 중요한 대회"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누수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선수의 어머니는 "지난 주에는 천장에 달려있는 파이프가 파손돼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바람에 밑에서 훈련하고 있던 아이들을 덮칠까봐 아찔했던 상황도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국제적 망신도 눈 앞에 두고 있다. 연맹은 제17회 한-일 청소년동계스포츠 교류 행사를 23일부터 27일까지 잡아놨다.

한-일 교류 행사에 선발된 선수들은 22일 체전 경기를 마친 뒤 이튿날 곧바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 소집돼 24∼25일 합동훈련, 친선행사 등에 참가한 뒤 26일 오후 공식 친선경기를 치른다. 합동훈련과 친선경기는 태릉스케이트장을 사용한다. 누수와 체전 개최로 인해 경기장의 빙질이 최적의 상태를 보이기 힘들 것이 뻔하다. 스피드스케이팅 라이벌 국가인 일본을 초청해 동계올림픽 개최국의 망신스러운 민낯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팅 경기가 천장 누수로 인해 연기됐다. 사진은 트랙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 태릉=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9.02.20/


청소년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라커룸 실태<스포츠조선 1월 22일 보도>에서도 드러났듯이 태릉스케이트장의 열악한 현실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촌이 진천으로 이전했다 하더라도 어차피 태릉스케이트장을 향후 몇년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선수들 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관리라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 현재 빙상 선수들은 태릉과 고려대 빙상장 외에 마땅히 훈련할 곳이 없다.

작년 여름에도 누수 현상이 자주 목격됐는데 사전 점검되지 않은 채 체전을 치르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부모들의 입장이다. 평소 훈련을 위해 태릉스케이트장을 사용하는 이는 엘리트선수라 해도 공짜로 이용하는 게 아니다. 대관비 명목으로 월 단위일 경우 초등생 5만원, 청소년 6만원을 내고, 1일권으로 하면 초등생 3000원, 청소년 3500원을 지불하고 사용한다.

태릉스케이트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바람에 비시즌기에 선수들은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는 실정이다. 전지훈련 한 번 갔다 오는데 1000만원 가량 든다. 학부모 최모씨는 "전지훈련이 해외 선진국 경험의 의미도 있지만 주변의 대다수 부모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 고충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강릉스피드스케이팅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태릉스케이트장은 국내 유일한 국제 규격 빙상장이었다. 대한체육회는 인터넷 홈페이지 안내 문구로 '국내에서 유일한 세계 8번째 400m 실내링크'라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운영을 하고 있는가?' 선수와 학부모들 모두 궁금하다는 반응이다.

관리 주체인 대한체육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대대적인 방수공사를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다. 20억원의 예산이 없었기때문이다. 체육회는 정부의 승인을 얻어 선수촌 관리 예산을 배분하는데 진천선수촌 이전 등으로 우선 순위에서 태릉스케이트장 공사가 밀렸다. 응급 조치로 심하게 훼손된 방수시트를 보수하고 방수비닐을 씌워놨지만 겨울철 강풍에 뜯겨 날아가 버렸다. 그 사이 이번 누수 소동이 일어났다.

올해에도 방수공사에 배정된 예산은 없다. 정부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된 태릉스케이트장에 별 관심이 없다. 체육회는 궁여지책으로 선수촌 기본관리(전기료 등) 예산에서 10억원 정도 끌어다가 시공 안전진단을 거쳐 부분적으로나마 방수공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앞으로 태릉스케이트장은 계속 사용해야 한다. 대체시설 확보가 안된 까닭에 언제까지일지 기약도 없다. 4월 이후 부분 방수공사를 위해 조기 휴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비나 눈이 오면 휴장을 반복해야 한다.

체육회 관계자는 "겨울철이라 긴급 방수 조치도 하기 힘들었다. 이번 누수 소동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실내 빙상장을 운영하는데 하늘에 맡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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