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캡틴'한민수-'빙판메시'정승환 아이스링크 떠나던 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5-28 05:30


평창패럴림픽 장애인아이스하키 동메달의 주역인 캡틴 한민수와 빙판메시 정승환이 나란히 정든 아이스링크를 떠난다. 한민수는 후배들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준비한다. 정승환은 새로운 동계종목 노르딕스키 도전을 선언했다.


"오늘, 후배들이 고별전이라고 팍팍 밀어주네요. 하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캡틴' 한민수(47)가 환한 미소와 함께 라커룸으로 들어섰다. 26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11회 KPH 강남베드로병원배 전국장애인아이스하키대회 1차전, 대한민국 유일의 실업팀 강원도청과 충남아산스마트라이노가 맞붙었다. '1강' 강원도청의 13대0, 일방적인 대승 속에 한민수는 나홀로 4골 4도움을 기록했다.




눈물의 '라이브' 애국가로 전국민을 울렸던 평창패럴림픽 동메달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날 국내 대회는 '캡틴' 한민수의 고별전이었다. 평창패럴림픽 후 은퇴 및 지도자의 길을 선언한 한민수는 이날 18년간 정든 동료들과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 "떠나기 싫어질까봐 3~4년 전부터 일부러 은퇴를 입에 달고 지냈다"고 했다. 고별전을 앞두고 한민수는 "평창패럴림픽 후 영어공부에 강연, 행사를 쫓아다니느라 훈련을 못했다" "오랜만에 썰매를 타서 중심도 잘 못잡겠다"고 했다. 엄살이었다. 수비수 한민수는 공격수, 윙어의 자리에서 씽씽 달렸다.


'빙판메시' 정승환과 정승환을 장애인아이스하키의 길로 이끈 '강원도청 주장' 이종경의 피앙세 최민희씨, 지인 및 팬들이 관중석에서 강원도청을 열렬히 응원했다.
이날 노르딕스키 전향을 선언한 '로켓맨' 정승환은 관중석에서 팬들과 함께 했다. 14년간 정든 14번 유니폼을 입은 채 선배 한민수의 고별전을 지켜봤다. "부상을 빼고 관중석에서 이렇게 앉아서 구경하는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불과 23초만에 첫 골이 터졌다. 시작점은 역시 '68번' 한민수였다. 맏형의 날선 패스를 이어받은 '신흥 에이스' 이주승이 골망을 흔들었다. 정승환이 "오늘 민수형, 작정했는데요"라며 미소 지었다. 1피리어드 13분39초, '절친' 이종경의 세번째 골을 돕더니, 2피리어드엔 팀의 4-5번째 골을 잇달아 꽂아넣었다. 3피리어드 5분48초, 13분31초, 연속골을 터뜨리며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캡틴 한민수가 평창패럴림픽 후 첫 대회이자 자신의 고별전인 전국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권 현장을 찾아준 전병극 문체부 국장을 향해 감사의 눈인사를 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장애인체육회 등 관계자들이 장애인아이스하키 경기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전하고 있다.
'공수의 핵' 한민수와 정승환이 한날 한시에 이별을 선언한 아이스링크,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체육협력관(국장)과 용필성 장애인체육과장, 최종길 대한장애인컬링협회장 등이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아내 민순자씨와 두 딸 소연, 소리는 아버지의 마지막 골에 환호했다. 한민수는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준 '열혈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 1초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베테랑. 캡틴의 플레이는 감동적이었다.



경기의 감동은 그날의 평창과 같았지만, 관중석은 그날의 평창과 많이 달랐다. 패럴림픽의 감동을 가슴에 품은 소수의 팬들과 가족들이 관중석에 드문드문 자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장애인체육에 같한 애정을 표하고, 문체부가 장애인체육 발전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는 시점에서 평창패럴림픽 후 첫 대회, '캡틴' 한민수와 정승환이 함께 떠나는 날의 풍경은 어딘지 쓸쓸했다. 뜨거운 환호와 축복 속에 치러져야 할 고별전은 지인들과 팬들의 조촐한 축하, 기념사진으로 마무리됐다.

평창의 열기를 이어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다. 대회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였다. 현장의 관계자들 역시 "평창패럴림픽 이전과 달라진 게 아직은 없다"며 씁쓸해 했다. '에이스' 한민수와 정승환이 떠난 자리, 선수들이 고령화되고 선수층은 더 엷어지면서 세대교체 및 선수 발굴, 수급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현재 논의중인 '1강'강원도청에 필적할 실업팀 창단도 시급하다. 이번 대회 출전한 팀은 불과 4개팀(강원도청, 고양아이스워리어스, 서울 연세 이글스, 충남아산스마트라이노), 이들의 전력 격차가 극심했다. 8골 이상은 '예의상' '사기상' 스코어를 표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장애인용으로 만들어진 의정부빙상장의 링크 출입구는 썰매를 탄 장애인선수들이 통과하기에 비좁고 불편했다.





그러나 지난 18년간 외로운 길, 서로를 의지해 씩씩하게 달려온 이들은 불평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8월 지도자 및 영어연수를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한민수는 희망을 노래했다. "우리 후배들이 잘해낼 것이라 믿는다. 더 나아질 것이다. 당장의 메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강습회 등을 통해 장애인, 비장애인들에게 우리 종목을 더 많이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장애인아이스하키를 알리고 열린 기회를 주고 싶다. 죽기살기로 메달 따기에만 집중하기보다 지도자로서 이 종목을 함께 즐기고 활성화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승환이와 함께 올림픽에 4번 도전했고 3번의 올림픽 끝에 평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메달의 꿈을 이룬 후 떠나게 돼 행복하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이제는 더 튼실한 인프라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승환이처럼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남은 우리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어깨가 더 무겁다.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의정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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