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레너드' 조인주 챔프의 근황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5-10 17:43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9. '한국의 레너드' 조인주 챔프의 근황

봄이 오니까 개나리가 피는 건지, 아니면 개나리가 피니까 봄이 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화창한 봄날인 지난주 토요일이었습니다. 필자가 22년 전 근무했던 서울체고에서 당시 체육 교사로 근무하면서 레슬링 감독을 역임했던 2012년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레슬링 코칭스태프 유종현 교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조인주 전 챔프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조인주 챔프가 운영하는 여의도 복싱체육관 근처의 여의도중학교에 유종현 교사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복싱을 좋아하는 유종현 교장은 방과 후 수업으로 학생들을 조인주 챔프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보내면서 교류가 시작되었고, 유종현 교장 자녀 결혼식에 조인주 챔프가 참석한 것이죠. 그래서 저와의 상봉도 이뤄진 것이고요. 순간적으로 직업의식(?)이 발동하면서 '복싱 히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조인주를 전격 낙점했죠. 오늘 그의 숨겨진 스토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조인주 챔프(왼쪽)와 유종현 여의도중 교장.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우선 조인주는 김기수, 박찬희, 변정일, 문성길, 김지원과 함께 국가대표 출신으로 세계 챔피언에 오른 6명 중 한 명이죠. 68년 전남 담양 태생으로 유년기에 서울 동대문구로 이사 온 조인주는 학창시절 '제기동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발군의 축구 실력을 보여줬죠. 조인주는 유종만 한국체대 교수, 백인철 챔프와 함께 공 잘 차는 복서 3인방입니다.

79년 3월 어느 날 조인주는 TV를 통해 '대학생(동아대) 복서' 박찬희가 '대학교수'란 닉네임을 지닌 WBC 플라이급 챔피언 미겔 칸토(?u시코)를 맞아 현란한 테크닉으로 챔피언을 유린하며 정상 등극에 성공하는 장면을 봤죠. 그 경기는 조인주의 복싱 입문에 단초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테니스 국가대표인 네 살 위 누나 조민숙이 아시아선수권에서 단, 복식을 휩쓸며 위풍당당하게 커다란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오자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 조인주는 고교 진학도 포기하며 챔피언의 야망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그리고 맞이한 84년. 만 16세 소년 조인주는 신준섭의 LA 올림픽 금메달 경기를 관심 있게 시청한 후 그해 10월 인근 서울체육관(관장 김경선)에 입관하며 챔피언의 꿈에 도전합니다.

조인주는 이듬해 2월에 개최된 서울신인대회 라이트플라이급 2회전에서 신인답지 않은 하이테크한 기량으로 당시 '복싱 신동'이라 불리던 88체육관의 진윤언이란 복서를 꺾는 등 5전 전승 우승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습니다. 이 경기에서 패하고 상심한 진윤언은 그해 6월 프로로 전향, 26전승(18KO)을 거둔 후 WBA 플라이급 챔피언 유리 아르바차코프(러시아)와 일전을 벌였던 정상급 복서였죠. 이 경기를 지켜본 황철순이란 지도자는 조인주가 물건(?)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해 조인주를 리라공고로 스카우트해 갑니다. 이후 조인주는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플라이급의 독보적인 스타로 발돋움합니다. 특히 죽창처럼 쑤시는 스트레이트와 특유의 동체 시력, 그리고 경쾌한 발놀림은 초고교급 수준이었습니다.


고교 무대를 평정한 조인주는 졸업반이던 87년 쿠바에서 벌어진 세계청소년 복싱대회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제41회 전국선수권대회 겸 88서울올림픽 4차 선발전 플라이급에서 대통령배 최우수복서 출신의 전병성(한국체대)을 꺾고 우승하며 국내 성인 무대까지 접수합니다. 89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결승에선 유럽선수권자이자 월드컵 금메달리스트인 세계적인 복서 누마노프(러시아)를 제압하는 대회 최대의 돌풍을 일으키며 국제무대까지 석권합니다.

당시 대표팀 김승미 감독은 "조인주가 아웃복싱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경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즈음에 물이 오른 조인주는 88체육관에서 열린 당시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과의 스파링에서도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을 십분 발휘, 초접전을 벌일 정도로 높은 수준의 공-수-주 3박자를 겸비한 복서였습니다. 황철순 감독은 지금까지 스쳐 간 복서 중 가장 뛰어난 복싱 센스를 지닌 복서라고 조인주를 치켜세웠죠. 박영균, 최희용 챔프 등을 조련하며 WBA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한 현대프로모션 김광수 관장은 "복싱에서 때리는 동작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지만 민첩하게 피하는 동작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각"이라고 복싱을 정의했는데 이 정의대로라면 문성길 같은 복서는 반복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조인주 같은 유형의 복서는 선천적으로 하늘이 주신 좋은 재능을 선물 받은 복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절차탁마가 부실해 롱런으로 가는 길에 브레이크가 걸렸죠. 복싱에 전력투구했다면 '레너드 복싱'에 가장 근접한 한국 복서라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했지만, 아쉽게도 백인철 챔프와 같은 유형의 무골호인이자 백인철 챔프와 난형난제를 이룰 정도로 애주가여서 수준 높은 기량만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죠.

조인주는 90년 서울컵대회에서 고교생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박덕규(경북체고)에게 준결승전에서 9-16으로 패하면서 주춤했지만, 대학 졸업반이던 91년도엔 전국체전과 대통령배에서 '동국대 애주가 3인방' 권만득, 김재경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며 피날레를 장식했죠.

92년 조인주는 이거성씨가 대표로 있는 풍산프로모션으로 가 프로로 전향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복싱 침체와 맞물려 98년 세계 타이틀전에 도전할 때까지 6년 동안 불과 12전의 일천한 커리어에 들쭉날쭉한 경기 스케줄 때문에 정상적인 트레이닝을 할 수 없었던 최악의 상황에서 결전을 준비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 만 30세. 복서로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였죠. 챔피언 제리 페날로사는 한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14전 전승(12KO)을 거둔 한국복서 킬러이자 41전 39승(24KO승) 1무 1패의 화려한 링커리어를 기록한 극강의 사우스포 챔프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필리핀은 사우스포 챔피언이 많이 탄생한 국가였죠. 플레시 엘로르데, 벤 빌라플로어, 롤란도 나바레테, 프랑크 세데뇨, 매니 파퀴아오 등 사우스포 '황금복서'들이 줄을 이었죠. 제리 페날로사도 그 라인 중 한 명이었죠. 제리 페날로사는 97년 가와시마(일본)에게 탈취한 타이틀을 4차례 방어에 성공한 난공불락의 사우스포 챔프였죠.

반면 경기 열흘 전 무릎 부상으로 아침 로드워크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전을 준비한 30세의 늦깎이 도전자 조인주로선 홈 링의 이점 이외에는 모든 상황이 첩첩산중, 진퇴양난, 설상가상인 상태에서 경기를 치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마치 잠시 멈춤 상태에서 재생 버튼을 누른 듯 오랜 공백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조인주를 볼 때 경외감마저 들더군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뉴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고목에 꽃이 활짝 피는 순간이었죠.


◇챔피언 페날로사와 격돌하는 도전자 조인주(오른쪽).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트레이너 경험이 풍부한 마방렬 트레이너와 혼연일체가 되어 이뤄낸 금자탑이었습니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숙지하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역설했는데, 조인주는 마방렬 트레이너의 지시대로 움직여 이글거리는 지옥의 유황불을 피해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행(?) 열차에 탑승하며 벅찬 희열을 만끽했죠. 조인주는 문성길, 김태식 챔프처럼 강한 임팩트는 부족할지 몰라도 안정된 디펜스와 빠른 발, 민첩한 센스 등은 롱런을 위한 최적의 스타일이었죠. '좋은 공격으로는 경기를 이길 수 있지만, 좋은 수비로는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스포츠계의 격언처럼 조인주는 롱런이 기대되는 챔프였죠.

하지만 제리 페날로사와의 재경기에서 승리하는 등 5차 방어에 성공했으나, 6차 방어전 원정경기에서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 3세 홍창수(도쿠야마 마사모리)에게 판정패하며 벨트를 풉니다. 19전 18승(7KO승)만의 첫 패배였죠. 홍창수는 당시 21전 18승(5KO승) 1무 2패의 링커리어에, 98년 12월 한국의 유명우를 꺾는 등 2체급 세계 정상을 차지한 일본 복싱영웅 이오카 히로키를 5회 KO로 잡으면서 주목받은 복서였죠.

조인주는 2001년 5월 워커힐호텔에서 '빌려준'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 홍창수와 리벤지 경기를 치릅니다. 국내에서 벌어진 최초의 '남북경기'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몰라도 조총련계 250명을 비롯, 일본에서 500명의 응원단이 입장해 눈길을 끌었던 경기로 기억됩니다. 조인주는 이 경기에서 5회 KO패를 당하며 복싱 인생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사실상 은퇴한 상태에서 체중 조절에 실패한 것이 승패를 극명하게 갈라놓았던 겁니다. 조인주로선 멈춰선 기관차가 시동을 걸고 재약진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여실히 느낀 한판이었죠. 홍창수도 이 타이틀의 8차례 방어에 성공하며 조인주의 후의(?)에 보답합니다.

조인주는 은퇴 후 용산에서 10년 이상 체육관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다 몇 년 전 후배에게 물려주고 최근엔 리라공고 시절 절친인 박기홍과 함께 여의도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기홍은 은퇴한 조인주에겐 금란지교 같은 친구입니다. 박기홍은 조인주가 잘 나가던 챔피언 시절 많은 벗과 어울리며 유흥을 즐길 때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 친구지만, 조인주가 챔피언 벨트를 상실하고 낙심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위로해 준 친구입니다. 조인주가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매일 찾아오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며 흥청망청할 때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체육관을 정리한 조인주가 야인으로 전락하며 실의에 잠겨 있을 때 용기를 심어주고, 여의도에 억대의 돈을 투자하며 조인주에게 체육관이란 보금자리를 새롭게 마련해 준 친구입니다. 박기홍은 "인주가 정신만 차렸다면 15차 이상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면서 "천성적으로 고운 성품을 지닌 인주는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죠.


◇조인주 챔프(왼쪽)와 그의 절친 박기홍 대표.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조인주는 챔피언 시절 그래도 2차례 원정 방어전을 치르는 등 제법 많은 돈을 축적한 덕분에 현재 서울 광진구 모처 30평대 아파트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화목하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건물 하나 사서 '복싱 전용 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더군요. 소망 성취하길 바랍니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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