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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코리아를 제안합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42년 전 유도 무제한급 최초의 (동)메달을 땄던 몬트리올올림픽(1976년) 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해외 출장이었다고 했다.
너무 많은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행복한 체육복지를 위해 대한민국 체육재정을 책임지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조재기 이사장(68)은 공교롭게도 취임 100일째인 1일 부탄 출장을 떠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개발도상국 체육복지 보급을 위해 추진한 '작은 체육관' 건립사업이 결실을 맺는 현장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태국 방콕을 경유해 가는 데만 1박2일이 걸리는 힘든 여정을 마친 뒤 8일 집무실에서 만난 조 이사장은 거구에서 뿜어나는 왕성한 체력을 과시하듯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부탄에서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열혈 체육행정가로서, 대학 교수 40년 경험의 달변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리에겐 작은 체육관이지만 부탄에서는 최대, 최고의 시설이었다. 변방국 부탄 국민들이 스포츠 하나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도움'의 소중함은 물론 대한민국 국격도 높아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취임 100일을 맞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는 조 이사장은 "서울올림픽의 기적 같은 성공을 발판으로 탄생한 공단이 이제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데 밑거름을 닦아야 하는 사명감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깜짝 제안을 했다. '으랏차차! 코리아'다. 요즘도 흔히 스포츠 현장에서 습관처럼 외치는 응원 구호 '파이팅'은 일제시대 잔재라며 순 우리말 '으랏차차'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싸우기 위한(파이팅) 스포츠를 중시했던 구습에서 벗어나 진정하게 즐기는 스포츠를 위해서는 물론 부탄에서 터득한 '도움'의 미덕이 바로 공단의 시대적 사명과 일맥 상통한다고 조 이사장은 설명했다.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의 초석이 되는 국민 친화적 생활·학교체육을 위해 공단 고유 사업인 '국민체력100' 확대 보급은 물론 연간 지원금을 3600억원대에서 5000억원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훈풍을 타기 시작한 스포츠 교류의 분위기에 맞춰 공단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구상도 빼놓지 않았다. 생활체육 불모지인 북한땅에 한국에서 각 지역에 정착된 체육복지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 이사장은 한국 유도사에서 '유도의 신'으로 불렸지만 동아대 교수,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체육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학문·실무·경영 능력을 두루 갖춘 행정가다. 교편을 잠시 내려놓고 체육복지 행정가로서 지휘봉을 잡은 그는 "오케스트라 리더십으로 으랏차차가 울려퍼지는 생활체육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취임 100일째 소회가 있을텐데.
메달리스트 1세대 행정가는 김성집 선생님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할 때부터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이자 멘토였다. '저 어른을 본받아서 저 분처럼 나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품어왔고 여기까지 왔다. '메달리스트 출신이 공단 이사장직을 잘 수행할까?' 우려도 있었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잘하지 못해 후배들 앞길을 막으면 안된다는 책임감으로 항상 연구하고 자신을 살피는 중이다. 전문 체육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2의 김성집'이 되고 싶다. 외부에서 바라볼 때 공공기관의 특성상 체육진흥공단은 역동성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막상 와서 겪어보니 젊은 인재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다만 체육복지를 위해 베풀고, 도움을 주는 보람된 일을 하는 곳인데 자긍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나눔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2016년 향년 97세로 작고한 김성집 전 대한체육회 고문은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역도에서 한국 최초의 (동)메달을 획득한 주인공으로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태릉선수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체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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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습관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대 스포츠를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일 때 부터 잘못된 게 있었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였다. 그들이 유럽에서 스포츠를 배워 도입할 때 싸움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한반도, 중국 정벌을 위해 싸워 이기는 게 우선이라 군사 체육화 됐다. 그래서 생긴 구호가 '화이토(파이팅)'다. 우린 그것을 그대로 배워 지금도 '파이팅'을 외친다. 왜 자꾸 '싸우자'고 하는가. 현시대 스포츠는 즐기는 체육활동이다. 일본은 정작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화이토' 대신 '간바레(がんばれ·힘내라)'로 바꿨다. 한국엔 '으랏차차(나가자, 힘내자)'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으랏차차'는 4박자 응원구호로 외치기에도 좋지 않은가. 이번에 부탄 출장에서 '으랏차차'를 외쳤는데 영어로 통역하니 'Go, Go! Cheer'라더라.(웃음) '으랏차차! 코리아'가 체육복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구호가 됐으면 좋겠다.
-즐기는 체육의 최일선 현장인 학교체육, 특히 여학생 체육의 활성화를 위해 공단 차원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국민체력100'이란 개인 맞춤형 체력관리 사업이 있다. 체력 측정과 운동처방, 체력증진교실로 이어지는 스포츠과학 기반의 서비스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협업을 통해 체력-의료 서비스 통합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체력인증센터를 올해 5곳 더 늘려 총 42곳을 운영할 예정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학교 현장이나 거동 불편 고령층에도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학생건강체역평가제도(PAPS)와도 연계해 전문 체력측정사, 생활체육지도사 등 전문가가 학교를 순회하며 체력측정은 물론 남녀 구별 없이 즐길 수 있는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제시하도록 한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남북 스포츠 교류 확대에 대해 공단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공단의 재정 지원으로 한국에 정착된 전국 지역별 생활체육 복지사업을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국민체육센터·개방형체육관 등 시설이 웬만한 지역에 모두 갖춰져 있다. 시설(AS·에어리어 서비스) 다음 단계는 PS(프로그램 서비스)이고 최종 단계가 클럽 양성이다. 한국은 현재 지역 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위해 전문 지도자를 양성하고 배치를 확대하는 중이다. 이에 대한 지원금도 2018년 3600억원 가량이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아직 군사체육 위주일 것이다. 앞으로 교류가 확대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즐기는 체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AS부터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계획 중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활기찬 나라'가 있고, 공단도 최근 창립 29주년 비전으로 '스포츠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를 선포했다.
누구나 체육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프로그램 등 이용자 친화적 생활체육 환경을 위해 나의 3년 임기 내에 연간 5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 2018년 기준 이 부문의 지원액은 3679억원이다. 공단의 새 비전에 대해서는 체육복지 확대, 체육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기금 조성사업 패러다임 전환(수익성→건전성), 서울올림픽 레거시의 발전, 모든 직원이 행복한 공단 등 5가지 실천 방안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체육복지를 위해 시설은 물론 스포츠 강사 배치 확대, 체육시설 안전관리 사업 등의 발전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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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사후 활용 문제 등 평창레거시 완성을 위해 공단 역할도 필요하다.
기적은 기적을 낳는다는 모토로 접근하고자 한다. 서울올림픽이 모범사례다. 당시 올림픽하면 나라 망한다고 했는데 3500억원의 흑자를 봤고 그 덕분에 공단이 탄생했다. 29년간 공단의 누적 지원금은 10조원을 돌파했다. 평창올림픽만 해도 1조3200억원을 도왔다. 총 11조4000억원의 대회 예산 중 11%를 웃도는 금액으로 대회 시설은 공단 지원으로 지었다고 보면 된다. 공단은 재정은 물론 사후 관리 노하우가 쌓여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인 결정을 내려주면 공단은 그에 보조를 맞춰 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서울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을 완성하는 게 공단의 바람이자 목표다.
-대한체육회가 스포츠토토 수익금의 50% 정률 배분을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조직을 사람에 비유해보자. 정책을 결정하는 두뇌(머리)는 문체부다. 공단은 생명유지를 돕는 오장육부가 담긴 몸통이다. 현장에서 움직이며 가르치고, 대회에서 성과를 내는 체육회는 팔과 다리라고 본다. 이들 3가지 구성 요소가 삼위일체가 돼야 사람은 정상 기능을 한다. 현재 체육회의 시도는 몸통에서 팔, 다리를 떼냈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다 죽는다. 문체부-공단-체육회가 하나의 몸으로 구성된 만큼 서로 상의해서 추진해야 한다. 때로는 견제와 협조가 필요하다. 차라리 체육회가 체육진흥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규제 요소를 완화시켜 예산 운용에 있어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한다. 현재 팔이 묶여 있는 상태라면 활개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평생 유도인으로 살아오셨다. 유도 외에 즐기는 스포츠나 건강관리 비결은.
모든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다. 현역 때 허리 척추와 무릎을 다쳐 수술도 받았다. 예순이 넘으니 격렬한 운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크게 무리가 안되는 골프를 한다. 필드에 못가더라도 주말이면 꼭 연습장에 간다. 허리 아프면 골프 같은 운동 하지 말라는데 나는 반대다. 운동을 한 것이 허리 통증 완화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에이징 스코어(자신의 나이에 맞는 타수)를 하고 싶다.(웃음)
-직원이 행복한 공단이라면?
작은 것부터 소통하고 배려하려고 한다. 결혼식 주례를 자주 보는데 항상 첫 마디가 "내가 주례를 보는 부부는 이 시간부터 서로 존댓말을 쓰자"는 것이다. 존댓말은 배려와 존중의 시작이다. 갈등 예방은 물론 자식 교육에도 최고라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께 물려받아 두 아들까지 3대에 걸쳐 실천하고 있다. 공단에서도 자식같은 부하 직원뿐 아니라 모두에게 경어를 쓴다. 그러니 일하는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웃으며)그런데 유일하게 편하게 말을 놓는 이가 있는데 수행비서인 조재호씨다. 내 막내 동생과 동명이인이다. 본관도 같고, 족보를 보니 동생뻘이어서 양해를 구하고 동생처럼 부르기로 했다.
조 이사장의 동생 조재호씨는 카바디대표팀 감독으로 부산 체육계에서도 알려진 인물이다. 조 이사장은 가끔 부산에 내려가면 "아무리 그래도 친동생을 수행비서로 데리고 다니느냐"는 농담 핀잔을 듣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공단 이사장에 취임하는 순간부터 술을 끊었다. 유도인들 중 애주가가 많기로 유명하다. 조 이사장도 이전까지는 그랬다. 이번에 이사장으로 발탁되면서 아내와 함께 서울로 이사오려는데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건강을 위해 금주하면 당신을 따라가겠다." 건강을 걱정해주는 아내의 마음이 고마웠던 데다 아내 없는 객지 생활이 두려웠던 조 이사장은 큰 맘 먹고 술병을 메다꽂을 수밖에 없었다. 체육인 출신 이사장으로서 흐트러짐 없이 일에만 몰두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최만식 기자 cms@,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