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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8년 전만 해도 썰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봅슬레이가 아시아 최초 메달을 획득하는 새 역사를 쓰기까지 많은 지도자들이 힘을 보탰다. 그 '보이지 않는 영웅' 중의 한명, 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40)이다.
루지 1세대인 이 감독은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 레이크시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뒤 루지대표팀을 지도하다 2011년 종목을 바꿨다. 동갑내기 조인호 스켈레톤대표팀 감독은 "이 감독이 나보다 생일이 이틀 빠르다. 그래서 총감독이 됐다"는 농담을 던지며 그 당시롤 떠올렸다.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선진 기술과 장비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직접 외국인 지도자와 장비 전문가를 찾아가 200kg가 넘는 장비를 옮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 시즌 기간에는 전국을 누비며 선수 발굴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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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진두지휘는 이 감독이 하고 세부적인 건 푸른 눈의 지도자들에게 맡겼다. 2013년 영국 출신 고(故 )데니스 말콤 로이드 코치를 영입하게 된 배경이다. 이 감독은 로이드 코치가 주먹구구식 훈련 방식을 뜯어고치고 전세계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트랙에 대한 코스 공략법과 장비 관리 방법까지 세밀하게 지도하는 동안 선수들의 처우와 시스템을 개선시킬 수 있는 재원 마련에 힘을 쏟았다.
훈련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선수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직접 시도체육회에 찾아가 실업팀 창단을 요청했다. 또 훈련비 마련을 위해 대한체육회와 후원사를 직접 찾아 다녔다.
이 감독에겐 '자신'은 없었다. 모든 것이 선수 위주였고, 팀 뿐이었다. '빵점 짜리 아빠'일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 훈련장이 없던 시절에는 여름에도 전지훈련을 떠나야 했고 겨울에는 대회 출전을 위해 집을 비웠다. 2014년 소치 대회 이후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거의 집에 가보지를 못했다. 그저 한국 썰매가 발전할 수 있고 선수들이 기적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자신은 그것에 만족한다며 웃었다. "동계 종목 지도자들은 꿈이 크지 않다. 축구와 야구 등 구기종목처럼 TV에 자주 비춰지지도 않는다.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스타트 지점과 피니시 지점에서 중계에 한 번씩 잡히는 것이 전부다."
아픔과 시련도 있었다. 2016년 1월 3년간 동고동락했던 로이드 코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선수들 못지 않게 이 감독도 큰 충격에 빠졌다. "로이드 코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경기장에 일주일이나 나가지 못하고 숙소에 머물러 있었다. 친한 외국인 친구가 숙소로 찾아와서 '네가 이러는 것을 하늘에 있는 곰머가 절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빨리 일어나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그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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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감독의 꿈이 이뤄졌다. 한국과 아시아 봅슬레이 사상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봅슬레이 4인승은 25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에서 귀중한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봅슬레이가 올림픽에 발을 내민 뒤 8년 만의 일군 쾌거이자 기적이다.
"더 이상 한국 썰매는 썰매 불모지가 아니다"라고 외친 이 감독,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다. 그의 철두철미함과 뚝심이 한국 봅슬레이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이제 이 용 감독을 기억한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