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평창 휴먼스토리]맹부삼천지교·녹색 스케이트화, 심석희는 '가족'을 위해 달렸다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8-02-20 20:46


심석희. 사진제공=갤럭시아SM

심석희. 사진제공=갤럭시아SM

심석희. 사진제공=갤럭시아SM

심석희(21·한체대)는 강릉 경포초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강릉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계에 입문했다. 당시 심석희는 정성스럽게 부모님에게 또박또박 편지를 썼다.

'부모님 요새 많이 힘드셨죠. 제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케이트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바로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와 세배 편지입니다. 부모님이 밥도 해주시고 머리도 자주 묶어 주시고 해서 감사 드립니다. 부모님 몸 건강하시구요! 힘내세요. 파이팅!' 심성이 고운 심석희는 2004년 12월 30일 자신의 뒷바라지로 고생을 하시는 부모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심석희는 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빛나는 별처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후 초등학교 5학년 1학기를 마친 심석희는 아버지 심교광씨를 따라 서울로 전학,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심석희. 사진제공=갤럭시아SM

심석희. 사진제공=갤럭시아SM
그 과정에서 심석희는 부모님의 헌신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공을 다짐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재능이 있다고 판단,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연고인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수중에는 1억원 남짓의 퇴직금이 전부였다. 심씨는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한 달 동안 찜질방을 전전하며 딸의 훈련을 쫓아다녔다. 특히 강릉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도 훈련장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기 위해 세 차례나 이사를 했다. 그야말로 '맹부삼천지교'였다.

아버지는 딸의 훈련장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근처에 집을 얻기 위해 중고차 매매, 남성복 판매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2014년 용인대 유도학과 다니던 오빠 심명석씨도 여동생을 챙겼다. 맞벌이로 여동생의 훈련비용을 충당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에게 비밀로 하고 휴학계를 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동생에게 번듯한 스케이트화를 선물해주기 위해서였다. 오빠는 9개월 동안 경호원과 햄버거 가게 배달 등 파트타임으로 돈을 모아 200만원 상당의 스케이트화를 심석희에게 선물해줬다. 색깔은 녹색이었다. 심석희가 평소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을 위해서도 심석희는 한눈을 팔 수 없었다. 훈련에 매진한 결과 기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심석희는 2010년 이후 에이스 부재에 시달리던 한국 쇼트트랙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2012년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다. 태극마크를 단 심석희는 시니어 데뷔 첫 시즌이었던 2012∼2013시즌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 3관왕을 시작으로 6차례의 월드컵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괴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13∼2014시즌에도 대회에 나설 때마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출전자격 대회였던 3차 월드컵에선 여자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4차 대회에서도 금·은·동메달을 한 개씩 목에 걸었다. 특히 한국쇼트트랙의 취약종목인 여자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 사상 첫 500m 금메달 기대감을 부풀렸다.


타고난 '훈련벌레'였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대표팀 훈련을 마친 뒤에도 얼음판 위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들과 똑같이 운동해서는 앞설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별명은 대표팀 밖에선 '에이스', 안에선 지독한 '훈련벌레'였다.


질주하고 있는 심석희.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심석희의 강점은 1m75의 큰 키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스피드와 순발력이다. 그리고 피지컬을 활용한 경기운영 능력이 탁월하다. 심석희가 선두로 치고 나오면 상대가 추월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심석희의 또 다른 장점은 포커페이스다. 무표정 속에서 두둑한 배짱이 느껴진다. 어린 나이임에도 큰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2014년 꿈에 그리던 소치올림픽에 나선 심석희는 세 개의 메달을 따냈다. 3000m 계주 금메달, 1500m 은메달, 1000m 동메달이었다.

이후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심석희에게 큰 자극이 됐다. 바로 또 다른 '괴물' 최민정(20·성남시청)이었다. 심석희와 최민정은 그렇게 세계 최강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이끄는 '원투펀치'로 성장했다.

부침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행 티켓을 가장 먼저 따냈지만 정작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맞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얻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였다. 최민정에게 밀리기도 했고, 기량 향상이 더딘 모습도 보였다.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는 폭행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코치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두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동료들의 위로와 주변인들의 격려로 심석희는 정신적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밝은 웃음도 되찾고 오직 올림픽 금메달만 바라봤다.

결국 고향인 강릉에서 해냈다. 심석희는 20일 활짝 웃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심석희는 14년 전 부모님께 한 약속을 지켰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달렸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