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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지원해보자. 재미있을 것 같아."
친구의 한 마디에 김아람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경기위원장(37)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당시 한국에서 교육 컨설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국제대회가 열리는 해외로 파견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2주 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였지만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호주에서 자라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고국에서 보지 못했다. 그 한을 풀고 싶었다." 김씨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한국인 최초 봅슬레이·스켈레톤 국제심판으로 참가한 대회는 미국 뉴욕주의 레이크 플래시드였다. "당시 기존 심판들과 관계자들이 평창올림픽이 열릴 나라에서 온 것을 알고 많이 도와줬다"며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맨 밑바닥부터 배우고 싶다'고 자청했다. 하루는 대회 교통관리도 했고, 하루는 스타트에서 얼음 스위핑도 했다."
종목 규정집 숙지에다 궂은 일까지 몸은 고단했지만 한 가지로 버틸 수 있었다. 김씨는 "처음이고 새로워서 설렘이 컸다"고 회상했다.
북아메이라컵으로 심판 경험을 쌓은 김씨가 처음으로 월드컵 심판을 본 건 2015~2016시즌 캘거리 대회였다.
김씨에 따르면, 썰매 종목 심판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안전'이다. 김씨는 "선수가 긴장해서 헬멧 턱끈 하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체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무게와 날 온도 체크'다. 김씨는 "스켈레톤에서 썰매의 무게와 선수의 체중을 합한 최대 중량은 남자 115㎏, 여자 92㎏을 넘을 수 없다. 초과 시 남자 33㎏, 여자 29㎏, 미만 시 남자 43㎏, 여자 35㎏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선수의 날 온도가 심판의 날보다 높으면 실격을 당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코치 항의의 대응이다. 김씨는 "번호표를 붙이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썰매 생김새까지 각국 초치진들의 항의가 거세다. 이것을 규정에 맞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심판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두 명이다. 캐나다 출신의 엘리자베스 바젤과 이스라엘 출신의 AJ. 엘더만이다. 김씨는 "자연스럽게 와서 가족처럼 대해주더라. 처음 만났을 때 바젤이 슬럼프였는데 내가 첫 심판을 했을 때 1등을 하고 함께 울었다"고 말했다. 또 "엘더만은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다. 눈이 오지 않은 이스라엘에서 경사가 났다. 가족들이 모두 찾아온다고 하더라. SNS으로 소통하면서 펜션도 잡아줬다"고 했다.
김씨는 평창올림픽에서 스켈레톤 경기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철저한 기준은 한 가지다. 중립이다. 한국 선수라고 해서 '봐주기'는 없다. 김씨는 "되도록 이면 훈련 때도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피한다. 외국 선수들과 관계자가 볼 때 괜히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전 5시에 출근해야 하는 삶을 6개월간 지속한 김씨는 "지난해 3월 테스트이벤트부터 빠진 심판들이 없다. '힘들어도 끝까지 가자'라는 마음을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최초다'라는 자부심으로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해 뛰고 있다"고 전했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