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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전성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제2의 전성기가 안되면, 제3의 전성기를 만들면 된다."
생애 4번째 세계수영선수권에서 돌아온 박태환(28·인천시청)의 표정은 결연했다. '메달' '성적'보다 '기록' '레이스 운영'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는 그는 천생 선수였다. '그 순간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치고 나가지 못했을까'를 수십 번, 수백 번 곱씹은 모양이었다. 그날의 실수를 복기하고, 집요하게 이유를 찾아냈다. 그런 승부욕이 '수영천재' 박태환을 만들었다. "결과는 안좋았지만, 원인을 알았으니 나쁘지 않다. 보완할 수 있다." 이미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16일 소속사 '팀 지엠피' 사무실에서 '포기를 모르는 수영선수' 박태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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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지난달 2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첫 종목이자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3분44초38의 기록으로 '0.45초차' 4위를 기록했다. 6년만의 대회 메달을 아쉽게 놓쳤다. 쑨양이 3분41초38로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박태환은 초반 100m까지 선두를 달렸다. 200m 이후 쑨양이 치고 나가던 구간에서 밀렸다. 페이스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날을 복기하던 '승부사' 박태환은 "지금도 짜증이 나서 팔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라고 했다. "메달도 아쉽지만 기록이 정말 아쉽다. 레이스 운영 미스였다." 쑨양(5번)과 제임스 가이(7번) 사이 '6번 레인'에서 전체 판도와 페이스를 놓쳤다. '2번 레인' 맥 호턴, '1번 레인' 가브리엘 데티가 한켠에서 그들만의 레이스로 2-3위를 찍었다. 쑨양과 분투하던 박태환은 "100m를 남기고서야 그쪽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순간 대처가 아쉽다.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몸과 정신이 하나가 돼 '따다닥!' 했어야는데…. '44초대'는 한 달 전에 찍은 기록이다. 테이퍼링도 하고 몸을 더 만들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8월 리우올림픽 이후 박태환은 쉬지 않았다. 1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훈련이 잘됐다. 기록도 좋았다. 리우 이후 출전한 모든 대회 자유형 400m 금메달을 휩쓸었고, 불과 한달 전 이탈리아 대회에서도 데티, 호턴을 제치고 우승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이런저런 분석이 나왔지만, 스스로 찾은 이유는 '멘탈'이었다. 훈련, 기술, 체력이 아닌 '마음'에서 이유를 찾았다. "생각이 많았다. 수영, 훈련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훈련은 잘됐다. 멘탈이 무너지니 몸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니 레이스가 무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m 턴 후 쑨양과 함께 치고 나가려 했는데 그게 안됐다. 한승호 물리치료 선생님은 경기 전 근육의 탄력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했다. 몸이 풀어져 있었다. 긴장을 많이 했고 '멘탈'이 무너지면서, 정신적 부분이 몸을 지배했다."
지난해 말 일본아시아선수권 4관왕, 캐나다쇼트코스선수권 3관왕 당시 박태환은 자유로웠다. 오직 레이스에만 집중했다. 6년만의 세계선수권, 메달은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위축된 부분도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봐야 하고, 짓눌리는 부분도 있었다. 정신적인 것을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같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지난 3년간 박태환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도핑 혐의로 국제수영연맹(FINA) 18개월 징계를 받았고, 징계가 끝난 후엔 리우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서슬 퍼런 정부와 맞섰다. 지난 5년간 자비로 전담팀을 꾸려 해외전훈을 이어가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괜찮은 척 버텼지만 괜찮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잘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강철 멘탈'은 흔들렸다.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다. "SK전담팀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 멘탈 트레이닝을 했다. 강한 멘탈 위에 코팅까지 했으니, 총을 쏴도 상처 입지 않았다. 지금은 총알이 더 커지고, 미사일까지 날아오는데 금 가고 깨진 부분을 보수하지 않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상을 입는 것같다."
'첫 단추' 징크스도 아쉽다. 첫 경기가 잘 풀리면 일사천리, 첫 경기가 꼬이면 대회 내내 고전한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리셋'이 어렵다. 박태환은 "선수로서 단점이다. 다음날 시합을 위해, 안된 걸 빨리 떨쳐야 되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그게 안된다. 지우려고 해도 안된다. 이 부분도 멘탈 코칭을 통해 보완하고 싶다"고 했다.
속상한 마음을 쏟아내던 박태환이 일순 냉정해졌다. "이런 얘기들은 결국 변명이 된다. 변명은 정말 싫다. 패인을 잘 분석해, 다음 아시안게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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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의 세계선수권, 박태환은 어느새 최고참이 됐다. 박태환은 "1980년대생이 나 말고 한두 명밖에 없더라"며 웃었다. "2007년 멜버른 대회 때는 막내였다. 2011년 상하이 때는 중간이었다. 엔트리에 나이가 씌어 있는데, 묘한 기분이 들더라. 나이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느덧 내가 이렇게 됐구나,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내가 10년 전 그랜트 해켓처럼…,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기록 종목에서 세월을 거스른다는 것, 20대 후반의 선수가 10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 메달을 다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박태환은 이 험한 길을 택했고,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태환의 경기 체중은 10년째 74㎏으로 한결같다. 치열한 자기 관리와 노력의 결과다. "나이는 많아졌지만 몸이나 근육은 망가지지 않았다. 팀 레인 코치와 전문가들도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몸이 예전만큼 안되면 본인이 가장 먼저 안다. 아직은 몸이나 훈련에 있어 문제가 없다. 훈련기록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내가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며 마흔한 살의 나이에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한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서른여덟 살에 축구 국가대표에 재발탁된 '라이언킹' 이동국(전북 현대) 등 타종목 베테랑 선배들의 길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만나서 배우고도 싶다"고 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는 일이다. "정말 존경스러운 운동 선배님들이다. 부럽기도 하고, 은퇴로 가는 길을 잘 설계하신 모습들도 멋있다. 이승엽 선수와 친분은 없지만 정말 존경스럽다. 한번 뵙고도 싶다. 종목은 다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의 변화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운동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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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10월 충북 전국체전에 출전한 후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 준비에 돌입한다. 아들의 외로운 분투가 못내 안쓰러운 60대 아버지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도 하지만, 선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때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 내년 아시안게임 때 꼭 좋은 성적으로 되돌려놓고 싶다"고 했다. 효율적인 스피드 훈련을 위해 그동안 고집했던 최장거리 1500m는 내려놓을 계획이다. "주종목 200·400m에 포커스를 맞출 생각이다. 예전부터 했어야 하는데 1500m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늦었지만 집중을 해야겠다. 200·400m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 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시안게임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겠다"며 말을 흐렸다. 가족의 힘으로 5년을 버텨온 박태환에게 장기 계획은 버겁다. 1년, 1년 계획을 수립하고,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도전할 뿐이다.
박태환은 요즘 '나는 왜 수영을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전성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전성기는 자신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의 전성기'가 안되면 '제3의 전성기'를 만들면 된다. 이번 대회 후 그 전성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시합 후 결과나 반응을 살피게 된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더 좋은 모습,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렇지 않은 분들께도 떠나기 전에 꼭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