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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투 더 스타트(Go to the start), 레디(Ready).'
그리고 '탕!' 출발을 알리는 외발 총성이 울려 퍼진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스케이트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다. '슉슉슉~'. 스케이트날이 얼음을 지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더더더!'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빠질 수록 코치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결승선에 가까워질 수록 빙판 위 숨결은 더욱 거칠어진다. 목숨 건 전쟁 같은 치열한 레이스. 그 끝자락에는 거친 날숨만 남는다. 경기장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한번 깊은 침묵 같은 평온이 찾아온다. 결과에 따라 선수들의 수많은 표정이 교차한다. 하지만 무사히 경기를 마친 안도감은 공통의 몫이다.
가장 신바람 나는 시간은 '금메달' 인터뷰다. 정상에 우뚝 선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일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 마코마나이 경기장에서 열린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녀 1500m 경기 후 열린 인터뷰장 풍경이 꼭 그랬다.
'금빛 남매' 박세영(23)과 최민정(19)이 따끈따끈한 금메달을 목에 메고 공식 기자회견실에 들어섰다. 두 선수의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특히 오랜 부상 공백을 깨고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박세영은 "애국가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빙판 위에 모든 것을 쏟아낸 그는 지친 체력과 기쁨의 교차로에서 잠시 길을 잃은듯 덤벙거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딱딱한 분위기를 녹였다. 당황한 나머지 발음이 꼬여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힘들어서 그랬다"고 귀여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반면, 옆에 앉아 있던 최민정은 비교적 차분했다. '세계최강' 실력만큼이나 대답도 똑 부러졌다. 그는 "이번 대회도 그렇지만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치르는 대회 모두 올림픽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준비를 잘 해두면 경기 전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박세영은 "와~ 너 말 진짜 잘한다"고 부러워 해 또 한 번 인터뷰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금빛 남매의 유쾌한 수다 시간였다.
'라이벌' 이상화(28)와 고다이라 나오(31·일본) 사이에는 미묘한 '장외 신경전'이 있었다. 올림픽 챔피언 이상화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고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라이벌 관계다.
21일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500m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나란히 7조에 배정됐다. 이상화는 아웃코스, 고다이라는 인코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팽팽한 경쟁 끝에 고다이라가 금메달, 이상화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상화는 쿨했다. 그는 "마지막 동계아시안게임이라서 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그래도 (금색보다) 은색이 예쁘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어 "오히려 마음은 편한 상태"라며 "위에 있으면 뒤에 있는 선수들에게 따라잡힐까 걱정도 했을 텐데 지금은 아니다.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 1등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지금은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설욕을 암시했다.
고다이라 나오 역시 한국 취재진과 마주했다. 그는 "상화는 정말 좋은 선수"라며 칭찬했다. 그러나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고다이라는 "레이스를 마치고 상화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화는 나보다 후배인데 늘 나를 친구라고 해서 내가 선배라고 말했다"고 웃으며 "내게 상화는 도전해야 할 상대이자, 한국어 선생님이자, 친구"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눈의 왕국 삿포로에서 펼쳐지는 경쟁은 선뜻할 만큼 차갑다. 하지만 그 속에 피어난 유쾌한 수다는 눈밭 위 노천탕 만큼 따끈따끈 했다.
삿포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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