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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선에서 붙지 않았다면 아쉬웠을 것 같아요."
속 시원한 '복수'에 성공한 심석희(20·한체대)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는 20일 열린 주종목 1500m에서 최민정(19·성남시청)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21일 출전한 500m 결선에서는 중국 판커신의 이른바 '나쁜 손'에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심석희는 판커신이 뻗은 왼손에 무릎을 잡히며 뒤로 밀려났다. 이후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 심석희는 가까스로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레이스가 끝난 뒤 심판들은 비디오 판독 끝에 판커신은 물론, 심석희에게도 실격을 선언했다. 자리바꿈 과정에서 반칙을 했다는 판정이었다.
아쉽지만 이를 악물었다. 심석희는 경기 후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경기를 경험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남은 경기까지 잘 집중해서 부상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굳은 다짐은 현실이 됐다. 의지는 경기장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심석희는 준준결선부터 단 한 차례도 1위를 내주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준준결선에서는 '나쁜 손'의 주인공 판커신과 맞대결을 펼쳐, 실력으로 상대를 당당하게 제압한 뒤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경기 후 심석희는 "(판커신과) 준결선에서 붙지 않았다면 아쉬웠을 것 같다"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날 심석희의 금메달을 포함해 금메달 5, 은메달 5, 동메달 3개를 쓸어 담으며 세계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번 대표팀은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뿐만 아니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만큼 평창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제 남은 일은 지금의 환희의 물결을 평창까지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이다.
中 '나쁜 손'… 평창에서도 경계 1순위
선수들 역시 평창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맏형' 이정수(28·고양시청)는 "지금 내게는 평창동계올림픽이 가장 크게 보인다"며 출사표를 대신했다.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서이라(25·화성시청) 역시 "큰 대회에서 더 잘하겠다"고 더 밝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평창에서도 환하게 웃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내야 할 것이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도 확인했듯이 중국의 견제는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할 변수다. 중국은 중국은 과거 양양A, 왕멍 등을 앞세워 한국의 독주를 견제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국의 '나쁜 손'에는 두 번 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날도 남자 1000m 준준결선에서 중국의 우다이징이 '나쁜 손'을 사용해 실격되는 일이 있었다.
최민정은 "솔직히 이전에도 중국 선수들의 그런(잘못된) 경우가 너무 많았다. 계주 때도 계속 그랬다"며 "평창 때는 아예 부딪침 없이 추월해 여지를 주지 않고 이길 수 있도록 체력과 스피드를 더 올리겠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이 배웠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나쁜 손'에 제대로 액땜한 심석희 역시 "중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는 충분히 더 거칠게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가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견제에) 넘어지지 않도록 잘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쇼트트랙은 말이 필요 없는 효자 종목이다. 동계올림픽에서만 금메달 21개를 싹쓸이 했다. 평창에서도 금빛 질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삿포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