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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앞으로 더 의미 있고 값지게 살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1996년. 일곱 살 어린 꼬마는 과천 아이스링크장을 찾았다. 고모가 선물한 낡은 빨간색 피겨 부츠를 신은채 빙판 위에 조심스레 올랐다. 대한민국 피겨사에 영원히 남을 영웅의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김연아(26)는 대한민국 '공식' 스포츠 영웅에 올랐다.
2003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김연아는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연기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섬세한 표정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새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는 2004년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08년 한국에 스케이팅이 도입된 이래 피겨 종목에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성인과 주니어대회를 통틀어 김연아가 처음이었다.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는 2009년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한 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총점 228.56점(쇼트프로그램 78.50점, 프리스케이팅 150.06점)으로 세계 기록을 수립하며 정상에 우뚝 섰다.
은퇴 무대였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판정 논란 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스포츠맨십으로 '여왕의 품격'을 선보였다.
은퇴 후 진로도 모범이 되고 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리픽 및 패럴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한국 스포츠 및 피겨스케이팅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서 힘을 쏟고 있다. UN 산하 아동구호기관 유니세프의 국제친선대사로도 활약 중이다.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인 김연아는 만장일치로 2016년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이태영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 위원장은 "1, 2차 추천 및 심의를 통해 김연아 선수를 스포츠영웅으로 선정했다"며 "이렇게 압도적으로, 만장일치로 스포츠영웅이 탄생한 것은 유일한 일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고 심사 경과를 보고했다.
2011년 태동한 스포츠영웅은 그동안 불굴의 마라토너 고(故) 손기정 원로와 영원한 올림피언인 역도의 고(故) 김성집 원로, 한국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 박신자 원로 등 8명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김연아는 9번째이자 최연소, 그것도 사상 첫 만장일치 스포츠영웅에 올랐다.
김연아는 "턱없이 어린 제게 영웅 칭호를 주셔서 과분하고 영광스럽다"며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제게, 이 상은 더 의미 있고 값지게 살라는 뜻으로 알겠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나를 이 자리에 있도록 만들어준 피겨스케이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또 다른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영웅에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며 "훈련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우리 후배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후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