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이었다. 박태환(27·인천)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10회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확인을 위해 박태환 소속사에 연락했다. 관계자는 "박태환이 대회에 참가한다. 우리 선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여론을 걱정했을 터다.
수면 위로 떠오른 '블랙리스트'… 김 종은 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막았나
19일 오전. 박태환이 이른바 스포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 차관은 박태환을 만난 자리에서 "리우올림픽에 선수가 아닌 이호준(15)의 멘토로 다녀오라"며 "이후 기업스폰서와 광고는 물론, 향후 교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불거졌다.
박태환은 FINA 징계 이후에도 대한체육회 규정에 발목이 잡혀 대표팀 자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대한체육회는 '천하의 박태환조차 예외는 없다'며 규정을 밀어붙였다. 박태환을 대표팀에 복귀시키라는 법원 판결조차 무시한 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판결 이후로 결정을 미뤘다. 이상할 정도로 강경했던 대한체육회의 입장. 이유는 단순했다. 김 전 차관이 총대를 멘 정부가 박태환의 리우행을 좌절시키고자 했던 이유는 결국 스포츠 4대악 척결의 논리적 함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포스트 리우' 박태환의 이유 있는 반전
박태환은 CAS 판결에 따라 대표팀 지위를 회복했다. 꿈에 그리던 2016년 리우올림픽 진출권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21일(한국시각) 일본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박태환은 "올림픽을 앞둔 상태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컸다"며 "올림픽에 출전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적인 부분보다는 오직 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이어 "(외압에) 흔들림이 있었다면 올림픽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 후원이라든지 대학 교수 자리 등에 대한 얘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올림픽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고 덧붙였다.
불안감과 싸워야 했던 박태환. 정신적 불안감 속에 자신감도 잃었다.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리우에서의 부진은 예고된 참사였다. 그는 어렵게 출전한 2016년 리우올림픽 자유형 100m, 200m, 400m 예선에서 탈락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리우에서 너무 답답했다"며 "상황이 어떻게됐든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리우에서의 아쉬움. 박태환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도약의 계기는 전국체전이었다. 그는 지난달 아산에서 열린 제9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정상에 우뚝 서며 부활을 알렸다. 이후 호주로 건너가 차분히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를 준비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국제대회에서 애국가 들을 날을 약속하며 훈련에 집중 또 집중했다. 희망을 얻었다. 그는 "전국체전 이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묵묵하게 물살을 가른 박태환은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썼다. 비록 박태환은 아직 물 속에 잠겨 있었지만 수면 위로 올라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물 밖으로 나와 시상대에 섰다.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금지약물 사건 전 숱하게 들었던 그 애국가가 너무나도 특별하게 귓가를 울렸다. '잃어버린 2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스물일곱 청년 박태환은 눈시울을 붉혔다.
박태환은 "쇼트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있다. 내년에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있다"며 "국민께서 응원해주셨고, 지금도 응원해주신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감사함을 수영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