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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의 눈물 딛고… 박태환-양학선, 희망 쏜 '화려한 부활'

김가을 기자

기사입력 2016-10-12 20:04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


2016년 8월. 대한민국은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에 잠겨 있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에서 들려오는 낭보에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 속에서 환하게 웃지 못한채 속앓이를 한 청춘들이 있었다. '마린보이' 박태환(27·인천시청)과 '도마의 신' 양학선(24·수원시청)이었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정상에 우뚝 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거머쥐며 승승장구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양학선 역시 2012년 런던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정상의 영광과 짜릿함,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큰 시련이 닥쳤다. 약물 파동과 부상이었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되면서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끝난 뒤에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 끝에 힘겹게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2년'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박태환은 어렵게 출전한 2016년 리우올림픽 자유형 100m, 200m, 400m 예선에서 탈락하며 고개를 숙였다.

양학선의 발목을 잡은 건 부상이었다.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앞두고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린 양학선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련의 터널은 길고도 어두웠다. 문득 문득 포기하고픈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박태환과 양학선은 부활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다.

눈물과 뒤범벅 된 채 흘린 땀방울은 금빛 메달로 돌아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치열하게 견뎌낸 시련 끝에는 눈부시게 환한 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밝은 내일을 응원하는 희망의 빛이었다.

박태환은 11일 아산배미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결선에서 3분43초68을 기록하며 정상에 섰다. 특히 박태환은 지난 2013년 자신이 세운 대회 최고기록(3분46초71)을 넘어서며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회복했음을 알렸다.


하루 전 열린 자유형 200m에서 1분45초01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금메달을 획득한 박태환은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도 발군의 기량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경기 후 박태환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한때는 수영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수영으로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시작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세계무대에서 다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됐다"고 조심스레 희망을 이야기 했다.

양학선도 높이 날았다. 양학선은 10일 충남남서울대학교체육관에서 열린 제97회 전국체육대회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1,2차 시기 평균 15.012점을 기록하며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물론 아직 완벽한 몸상태는 아니다. 아킬레스건은 물론이고 발목도 온전치 않다. 그의 다리는 여전히 퉁퉁 부어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선 양학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양학선은 '여2'(도마를 앞으로 짚고 두 바퀴 반 비틀기), '스카하라 트리플'(뜀틀을 옆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비틀기)을 선보이며 재기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한 단계 발전해 국제대회에서 입상하고 예전의 양학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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