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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교육기업 경영에 전념하던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67)이 기업이윤의 10%를 환원한다는 경영 방침에 따라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게 엊그제 같은데 강산이 두 번 변했다.
IMF 구제금융 위기가 닥친 1997년 '배드민턴 여왕' 방수현 등 형편 어려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돕기 위해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을 창단한 것이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아시아배드민턴연맹 회장,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이어졌다. 기업인으로는 최장 기간 체육계와의 인연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0월 5일 제40대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초대 통합회장이 선출되면 바통을 넘겨줘야 한다. 하지만 이별 아닌 이별이다. 조직에서 떠나는 것일 뿐 또 다른 형태로 스포츠 애정를 쏟아붓기 위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미래는 기초종목 육성 프로젝트다. 통합회장 선거 불출마를 한 강 회장은 서울 관악구 대교타워 본사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불출마 이후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회장선거 불출마 사실은…
통합 체육회장 선거에서 가장 유력했던 강 회장은 최근 출마를 포기해 체육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달 26일 대한체육회 제6차 이사회를 주재하면서 회장직을 사퇴하지 않아 관련 규정(체육회 회장을 포함한 임원이 후보자로 등록하려면 선거운영위원회 구성 이전에 사퇴)상 출마 자격을 자동 상실했다. 이로 인해 회장 선거 구도는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강 회장은 "처음부터 통합 회장을 할 뜻이 없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압설 등 다른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여전히 무성하다. 강 회장은 "정부 압력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대교는 'B2C(business to consumer)'기업이지 'B2G(Business to Government)'가 아니다. 평생 교육사업을 한 내가 정부 눈치 볼 일이 뭐 있느냐"고 덧붙였다. 그럼 불출마의 진짜 이유는 뭘까. 자신의 소신 때문이라고 했다. 강 회장은 "봉사는 아무런 사심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 내어주는 것이다. 명함이나 파고, 폼잡으려고 회장 하면 안 된다"면서 "공동회장으로 일하면서 체육회 예산 손대지 않고 사비 들이면서 다닌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활체육회장에서 통합체육회 공동회장으로 선임돼 생활체육을 대변하는 데 힘썼으니 이제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아우를 적임자에게 넘겨 주는 게 진정한 봉사라는 것이다. 강 회장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탓'도 했다. 4년 전 무릎 십자인대와 연골 수술 때문에 여전히 과로가 부담스런 그는 "내 몸 하나도 관리못하면서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체육회의 수장을 어떻게 하느냐"며 스스로 자격미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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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회장 이후…기초종목 육성 전도사
강 회장은 체육회장직에서 떠나지만 체육 봉사를 새로 시작한다. 사회환원 사업으로 설립한 세계청소년문화재단을 통해 기초종목 인재 육성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미래 한국 스포츠의 수영과 체조를 이끌 이호준(서울대부설중 3년)과 여서정(경기체중 2년)을 전담 후원키로 한 것이 첫 단추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한국의 기초종목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됐다. 대교는 올림픽 이전부터 이 사업을 준비해왔다. "개인적으로 리우올림픽 한국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편식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라는 강 회장은 "육상, 수영, 체조에 왜 100여개의 많은 올림픽 메달이 걸려 있겠는가. 기초종목이 없이 다른 종목도 성장할 수 없다. 기초종목에 친숙해지는 지름길이 생활체육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강 회장은 "앞으로 한국 스포츠는 기초종목 육성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면서 새로운 캠페인도 제안했다. '1회사-1농촌 돕기'처럼 기업들이 체육 인재 1명씩 후원하자는 것. "기업이 팀을 창단하는 게 부담스러울테니 비인기 종목의 숨은 인재를 한 명씩 도와주기만 해도 다 합치면 커다란 인재풀이 될 것이다."
통합체육회를 향한 고언
강 회장은 차기 통합체육 회장에 대해 국제적 감각까지 갖춘 50대 젊은층이 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46)은 상당히 젊다. 토마스 바흐도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63세의 나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됐다. 우리도 눈 앞의 자리만 볼 게 아니라 10년을 내다 보고 IOC 위원까지 키우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강 회장은 "IOC에는 위원이 아니더라도 집행위원, 커뮤니티 위원장 등 스포츠 외교력을 높일 수 있는 자리들이 많다. 이들의 정년이 70세 정도인 걸 감안하면 50대부터 준비해 도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 회장은 "체육회는 수천억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곳이다. 더이상 조직과 수장이 관료화되지 말고, 엘리트-생활체육이 물과 기름이 되지도 말고, 즐기는 국민체육을 위한 봉사 사령부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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