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10-14에서 15-14' 박상영 '47초 기적 드라마'의 비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8-10 15:50


박상영이 10일(한국시각) 벌어진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헝가리 임레 게져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박상영 선수가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은메달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베테랑' 게자 임레(42·헝가리) 앞에 경험 없는 '신예' 박상영(21·한국체대)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9-13으로 뒤진채 시작된 3피리어드, 다행히 첫 포인트를 따냈다. 10-13. 하지만 다시 점수를 허용하며 10-14까지 몰렸다. 한점만 내주면 경기는 '끝'이었다. 남은 시간은 2분23초. '기적', 바랄 건 그것 뿐이었다.

임레의 공격을 막으며 팔을 뻗었다. 파란불이 켜졌다. 11-14. 희망의 빛이 보였다. 다시 임레의 공격을 피하고 내민 칼 끝이 임레의 가슴에 적중했다. 기세가 오른 박상영의 공격이 또 한번 통했다. 두 번의 파란불. 13-14, 한점차로 줄어들었다. 남은 시간은 1분53초. 희망의 빛이 동트듯 밝아오기 시작했다. 재개된 경기. 12초가 흐른 뒤 박상영의 마스크 위에 또 다시 녹색불이 켜졌다. 14-14,

이제 불리한 것은 임레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도 위축됐다. 마스크를 잠시 벗고 드러낸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상영의 기세가 올랐다. 성큼성큼 다가갔다. 승리의 여신의 손에 이끌린 듯 팔을 쭉 뻗었다. 칼끝은 임레의 왼쪽 어깨쪽을 향했다. 파란불. 임레는 쓰러졌고, 박상영은 껑충껑충 뛰었다.

주춤하던 대한민국 선수단을 깨운 3번째 금메달이 탄생했다. 박상영은 10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카리오카아레나3에서 펼쳐진 2016년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임레를 15대14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남자 에페 사상 첫번째 금메달이자 이번 대회 내내 찡그린 얼굴을 펴지 못하던 펜싱의 체면을 살린 금메달이었다.

'47초의 기적'이었다. 조종형 펜싱 대표팀 총감독은 "결승전에서는 이런 대역전극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솔직히 막판에는 나도 포기했다"고 했다. 믿기 힘든 기적같은 역전승. 하지만 박상영의 '대역전극'을 단순히 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시계를 다시 10-14로 돌려보자.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고 생각한 임레는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 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박상영을 상대로 2전패로 열세였던 임레는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왔다. 순발력이 좋은 박상영을 의식해 수비적으로 나섰다. 박상영은 "당황했다. 상대가 내 장점을 잘 캐치해서 나왔다. 그 전까지는 나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인지 공격적으로 나왔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반대였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10-14, 한번의 공격만 성공하면 승리하는 상황이 오자 임레는 빨리 경기를 끝내고 싶어졌다. 꾹 눌렀던 공격본능이 다시 꿈틀댔다. 혼란스러웠던 박상영의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원래 임레가 공격적인 선수다. 올림픽 결승전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원래 급한 선수니까 '기다려보자' 생각했다." 의도한 대로였다. 임레가 박상영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박상영은 자신한테 덤벼드는 임레를 차분하게 피했고, 곧바로 득점으로 연결했다. 흥분한 임레는 자기 페이스를 잃었다. 기세를 탄 박상영은 순식간에 5점을 더하며 먼저 15점에 도달했다.


결승전의 흐름을 바꾼 전략이 집중력의 산물이었다면 대회 내내 보여준 박상영의 탁월한 기량은 철저한 준비의 열매였다. 박상영은 빠른 풋워크에 비해 손기술이 좋지 않은 선수였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큰 무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부족한 손기술 때문이었다. 박상영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손기술 향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팔을 향했다 비어 있는 어깨로 향한 마지막 금빛 찌르기는 이같은 연습의 결과였다.

결승 상대였던 임레와 준결승에서 만났던 벤자민 스테펜(스위스)은 모두 왼손잡이다. 박상영은 그간 왼손잡이 선수들에 약했다. 낯선 스타일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그에게 최상의 파트너가 생겼다. 조희제 대표팀 코치다. 박상영은 '왼손잡이' 조 코치와 집중 연습하며 왼손잡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다. 박상영은 "조 코치와 연습을 많이 했다. 왼손잡이에 대한 이질감이 사라지고 재밌어졌다"고 했다.

결국 '47초의 기적'은 놀라운 집중력과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드라마였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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