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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금메달이다. 비록 처음으로 출전하는 올림픽이지만 그간의 피나는 노력을 금메달이라는 수확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세계 주니어 챔피언' 출신인 남자 에페의 막내 박상영(21·한국체대)의 당찬 각오였다. 하지만 '미완의 대기'인 그를 향해 달려가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에페의 간판은 박상영이 아니었다. 4년 런던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정진선(32·화성시청)이었다.
박상영이 그 고지를 밟았다. 피나는 노력을 금메달로 입증했다. 리우에서의 돌풍이 폭풍을 넘어 태풍으로 변신했다. 한국 펜싱의 새 시대도 열었다. 펜싱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수확했다.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기대가 컸다. 그러나 빗나갔다. 리우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 자리는 눈물이 채웠다.
여자 사브르에서 2연패를 노린 김지연(28·익산시청)이 16강에서 탈락했다. '1초 눈물' 신아람(30·계룡시청)도 명예회복에 실패했다. 김지연과 함께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던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리우에서는 아예 종목 리스트에서 빠졌다.
물론 런던 대회보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다. 조종형 펜싱 대표팀 총감독은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색깔을 떠나 두 개 이상의 메달을 따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래서 첫 단추가 중요했다. 그 빗장을 박상영이 풀었다. 박상영은 10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아레나3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남자 에페 사상 첫 금메달을 선물했다. 15대14로 대역전에 성공했다.
'무서운 막내'가 시계를 돌려놓았다. 그는 열 넷살이던 중학교 1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물불 가리지 않는 '싸움닭'으로 발전하고 또 발전했다. 주니어 대회 세계 챔피언 출신인 그는 2년 전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서막을 열었다. "경기 전 누군가한테 맞는 꿈을 꾸었을 때는 오히려 경기가 잘 풀리고는 한다"며 "경기 시작 전에는 상대방을 없애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면, 경기에 죽을 힘을 다해 임한다."
그의 꿈은 올림픽 정상이었다. 박상영은 32강전부터 진군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파벨 수코프(러시아)를 15대11로 제압했다. 16강전에선 '맏형' 정진석을 제압한 세계랭킹 2위 엔리코 가로조(이탈리아)에게 복수했다. 15대12였다.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8강에서는 완승이었다. 막스 하인저(스위스)를 15대4로 완파했다. 그리고 4강전에서 벤자민 스테펜(스위스)을 꺾고 피날레 무대에 올랐다. 한국 남자 에페 올림픽 사상 첫 결승 진출이었다.
결승 상대는 게자 임레(42·헝가리)였다. 세계랭킹 3위인 임레는 백전노장이다. 박상영과의 나이 차가 무려 스물 하고도 한 살이다. 그는 2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올림픽 무대를 경험했다. 당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이후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를 차례로 나섰다. 2013년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하향세를 그리던 임레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펜싱 역사상 최고령 월드챔피언이었다.
박상영은 임레를 패기로 제압하며 세계 최정상에 우뚝섰다. 3피리어드에서 그야말로 대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메달로 한국 펜싱도 수렁에서 탈출했다. '무서운 막내'가 '흑기사'였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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