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발품인터뷰]'양손없는 마라토너' 김영갑 "희망 위해 달린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6-04-25 07:14


김영갑(왼쪽)과 안점호 감독이 경기 후 포즈를 취했다. 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

[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경기는 끝났다. 주저앉았다. 예상보다 저조한 기록이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애써 위로를 했다. 아쉬움보다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항상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양 손없는 마라토너' 김영갑(43·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의 2016년 런던마라톤은 그렇게 끝났다.

김영갑은 마라톤계에서는 유명인사다. 1999년 구미의 한 대기업 생산공장 내 변전실에서 근무하다 고압패널에 감전됐다. 목숨은 건졌지만 양 손이 타버렸다. 양손을 잘라냈다. 1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집근처 낙동강변 산책을 시작했다. 조금씩 뛰다보니 다른 신체부위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후 구미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했다 뛰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손은 없지만 튼튼한 다리가 있다'면서 마라토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가 완주한 마라톤 횟수만 170회에 달한다. 최고 기록은 2시간 34분이다. 웬만한 국내 마라톤대회에 나가면 마스터스 부분에서는 선두권에 오를 정도의 실력이다. 전세계 유명 마라톤도 다 뛰었다. 500㎞이상을 뛰는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했다. 2014년에는 공중파 TV 강연프로그램에 출연해 '희망'을 전했다. 이번 런던 마라톤은 2006년 이후 10년만에 참가였다.

김영갑의 목표는 2016년 리우 패럴림픽 참가였다. 작년 10월 캐나다 빅토리아마라톤에서 2시간 49분을 뛰었다. 올림픽 참가를 할 수 있는 A쿼터 기준 기록은 2시간 45분이다. 아쉽게 A쿼터에는 들지 못했다. 물론 B쿼터 기준 기록인 3시간안에는 들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리우 패럴림픽전까지 국내에 A쿼터 기준 기록을 넘는 선수가 없다면 김영갑이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에 관계없이 A쿼터 기준 기록을 넘겨 당당하게 리우를 밟고 싶었다. 겨울 동계 훈련 내내 A쿼터 기록 작성을 목표로 뛰었다.

하지만 런던 마라톤을 앞두고 악재가 찾아왔다. 왼쪽 고관절이 아파왔다. 경기 포기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런던에 오기 전 많은 분들이 응원해줬다. 완주만이 보답이었다.

3시간의 레이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공식 미디어가이드에 있는 깅영갑의 소개글은 단 2문장에 불과했다. 현지 중계진들도 그를 외면했다. 김영갑이 중계화면에 잡힌 것은 딱 2차례였다. 출발 모습 그리고 엘리트 여자부 후위 그룹에게 따라잡힐 때 화면에 살짝 나온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런던 시민들의 응원이 있었다. 달릴 때마다 런던 시민들은 박수로서 김영갑을 격려했다. 구경나온 한국 관광객들도 그의 가슴에 박힌 'KIM'과 'KOREA'를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 외침에 힘을 내 한발한반 전진해나갔다. "길가에 있던 런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르죠."

김영갑은 이날 42.195㎞를 딱 3시간에 뛰었다. 출전 선수 10명 가운데 꼴찌였다. 목표였던 리우 패럴림픽 A쿼터 기록도 달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날 경기 후 리우행을 포기했다. 김영갑을 지도하는 안점호 경북장애인육상실업팀 감독은 "아무래도 고관절 부상 때문에 리우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김영갑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컸다. "패럴림픽은 한번도 나가보지 못했어요. 꼭 나가고픈 대회였어요. 이렇게 무산이 되는게 아쉽네요."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뛰고 또 뛸겁니다. 제게는 두 다리가 있으니까요. 리우는 힘들지만 2020년 도쿄에서는 당당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저를 위한 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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