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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웅 대한럭비협회장 "럭비월드컵 출전, 현실될 수 있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4-05 21:47


대한럭비협회 이상웅 회장 인터뷰 (세방그룹 회장)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4.05.

럭비에 '럭'자도 몰랐다고 한다.

해병대 장교 모임에서 대한럭비협회장 제의를 받았다. 뜻하지 않은 일이라 주변의 반대도 있었다. "스포츠 단체장은 처음이다. 스포츠인도 아니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그래도 사업처럼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원리는 똑같다는 생각으로 첫 발을 뗐다."

1년이 흘렀다. 국내를 넘어 한국 럭비를 바라보는 지구촌의 눈이 달라졌다. 럭비는 '선진국형 스포츠'로 대우받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럭비월드컵은 단일 스포츠 행사로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하계올림픽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자랑하는 '세계 3대 이벤트'다. '이웃 나라'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해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출전 중이다. 반면 한국은 '아웃사이더'였다. 월드컵 출전은 꿈도 못꿨다.

대한럭비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58)이 1년 만에 한국 럭비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전 회장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대한럭비협회장에 선출됐다.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이곳저곳에서 '럭비계가 난파됐다'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이 회장은 "이왕 할거면 제대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원칙도 세웠다.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았고, 가시적인 성과에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인 최재섭 럭비협회 이사가 지난 연말 사상 최초로 아시아럭비연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집행위원에 당선됐다. 2월에는 여자 럭비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아시아 여자 럭비 발전대회 7인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달에는 2019년 일본 럭비월드컵과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럭시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인 뉴질랜드 출신의 존 월터스 감독(44)을 선임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모두 연출한 작품이다. 럭비협회장 취임 1주년을 맞은 이 회장을 5일 서울 역삼동 세방그룹 회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럭비월드컵 출전은 택도 없는 꿈이 아니다. 아시아인 일본에서 열리는 럭비월드컵은 물론 올림픽도 절호의 기회다. 한국 럭비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두 대회 모두 출전하는 것이다. 충분히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만에 '럭비 박사'가 된 이 회장으로부터 한국 럭비의 오늘을 들어봤다.


대한럭비협회 이상웅 회장 인터뷰 (세방그룹 회장)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4.05.
-럭비협회를 이끈 지 1년이 흘렸다.


불합리한 것은 개선하고, 좋은 것은 전통을 이어가자는 것이 기본 틀이었다. 하지만 럭비협회는 동호회 모임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체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도 다시 채택됐다. 정부와의 소통은 물론 스포츠 외교도 해야한다.하지만 이사회 구성이 100% 경기인 출신이었다. 물론 경기인도 중요하지만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사진 구성을 위해 공고를 냈다. 30명 이상 되는 분이 지원을 했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몇 분을 빼고 전원을 직접 인터뷰를 했다. 밖에서 이사회 구성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이 정도 역량이면 봉사할 수 있겠다는 분을 모셨다. 제대로 잘 하기위해 3개월이 걸렸다. 내부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사무국도 새롭게 구성했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지만 많은 원로 선생님들이 방향이 맞다고 격려해 주셨다.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사외와 사무국이 100% 환골탈태했다.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협회가 많이 안정된 점은 보람이다.

-국제 럭비 무대에서 한국 럭비의 위상도 재정립하고 있는데.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럭비월드컵 준결승전을 관전하고, 월드럭비 총회에도 참석했다. 럭비라는 것이 엄청난 세계적인 조직이란 점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관심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총회 참석은 회장밖에 안된다고 해서 그때 최재섭 이사를 통역으로 변신시켜 함께 참석했다. 스포츠 외교의 각축장이었다. 다들 한국의 대표가 총회에 참석한 것에 처음이라며 신기해 하더라.

한국의 위상에 걸맞는 변화가 필요했다. 총회에서 버나드 라파셋 월드럭비 회장과 당시 홍콩의 트레버 그레고리 아시아 회장 등과 교류하면서 외교채널을 복귀했다.

-최재섭 이사가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것도 큰 성과다.

국제 럭비계에서 한국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국가로 바라봤다. 최 이사가 집행위원에 선임되는 과정에서 그레고리 회장과 협상이 있었다. 그레고리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럭비연맹 대표인으로 추천했다. 내 생일인 12월12일이 선거일이었다. 식구들이랑 밥을 먹는데 최 이사가 당선됐다고 전화가 왔다. 70년 럭비 사상 벌어진 최초의 사건이다.

-여자대표팀이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경사도 있었다.

지난해 9월이었다. 20세 이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규정에는 선수 선발전을 통해서 뽑게 돼 있다. 그러나 과거 관행대로 감독들끼리 적당히 모여서 뽑더라. 실무적으로 반발이 많았지만 페널티를 감수하고 그때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2만달러(약 2300만원)가 위약금이 있는데 감수할 계획이었다. 그 과정을 아시아연맹에 그대로 설명했다. 아시아연맹이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며 2만달러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회신을 했다. 연장 선상으로 여자대표팀은 아시아시리즈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아시아연맹의 잘못으로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협상을 했다.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대신 홍콩 전지훈련을 제안했다. 그 때 여자선수들이 레벨이 높은 외국팀들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큰 경험을 했다. 그 결과가 우승의 밑그림이 됐다.

-남자대표팀의 경우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는데.

대표팀의 성적이 지금보다 좋아져야 된다. 그래야 선순환이 된다. 월드컵 감독은 뉴질랜드 출신이지만 일본, 홍콩에서 생활해 동양적인 사고도 갖추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바꾼 것처럼 기대하는 부분이 크다. 또 배울 점이 많다. 선수들과 지도자들도 긍정적이다. 감독이 바뀌어서 당장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없지만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지난해 럭비월드컵 결승전이 트위크넘 스타디움은 런던 시내에서 30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100년전에 만들어졌는데 8만명이 들어가는 경기장이었다. 럭비 인프라가 정말 엄청나더라. 한국 대표 선수들이 이런 땅을 밟아볼 수 있는 날이 언제가는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야할 길, 비전이 더 명확해졌다. 선수들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현재의 4개인 실업팀도 6개로 늘릴 계획이다. 역시 럭비 활성화 첫 스타트는 대표팀 전력 향상이다.

-마지막으로 럭비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럭비 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럭비는 절대 혼자서 앞서 나갈 수 없다. 전진하려면 동료가 있어야 된다. 끊임없이 볼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다. 특히 자기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스포츠다. 학교에서도 럭비를 배울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영국 등 럭비 강국은 10대 소년들에게 럭비 정신을 강조한다. 럭비의 팀워크 정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규칙도 엄격하다. 또 신사적인 스포츠다.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한 뉴질랜드가 라커룸에서 세리머니를 마친 뒤 라커룸을 깨끗이 청소한 것은 신사 정신의 단면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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