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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육유공자법을 발의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기다려준 체육인 후배, 김소영 센터장에게 감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5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법률안 일명'대한민국 체육유공자법'의 첫 대상자를 선정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직전 중증장애를 입은 김소영 선수,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목에서 숨진 고 김형칠 선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레슬링 합숙훈련 중 사망한 고 김의곤 감독, 2013년 터키세계양궁선수권 경기중 쓰러진 고 신현종 감독 등 4명이 선정됐다. '탁구 레전드'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지, 3년 2개월, 2014년 12월 31일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무려 1년10개월만의 일이다.
이 의원과 김 센터장의 인연은 이 의원이 태릉선수촌장으로 일하던 200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메달 유망주로 촉망받던 김 센터장은 대회 직전 이단평행봉 훈련 중 추락하며,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휠체어를 타게 됐지만 '체조 사랑'은 멈출 수 없었다. 가끔씩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들렀고 경기장도 찾았다. 그러나 사고 후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불편한 시선에 종종 위축되곤 했다. 2005년 이에리사 촌장과의 첫 만남은 달랐다. 김 센터장은 "촌장님이 나를 보시자마자, '소영이, 왔구나'라며 후배로서 반겨주셨다. '체조장에 갔다왔니' 하시기에 '반가워할 것같지 않다'고 꺼렸더니 '무슨 소리야, 선배로서 당연히 가서 후배들을 격려해줘야지' 하시며 직접 나를 체조장으로 이끄셨다"고 떠올렸다. "그때의 울컥하는 마음, 위로받은 마음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체육인을 대표해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체육유공자법'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해 달리고 날아오르는 청춘들이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30년째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씩씩하게 활동중인 김소영 센터장, 선수단 총감독을 맡았던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경기중 낙마하며 사망한 고 김형칠 선수 등 가슴에 담은 후배들은 열정의 원천이었다. 이 의원은 체육유공자법 발의 직후 "'이제 저 마음대로 훈련해도 되겠네요'라고 한 체조국가대표 양학선 선수의 말을 잊지 못한다"고도 했었다. "고난도의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고 국위선양 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과의 첫만남 이후 10년이 흘렀다. 2015년 11월, 1986년의 '체조요정' 김소영은 사고를 당한 지 29년만에 체육유공자법의 첫 대상자로 선정됐다.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들이 훈련이나 국제경기 중에 사망 혹은 중증 장애를 입게 되는 경우, 국가대표보상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 체육유공자로 지정되고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선정된 4명의 체육유공자는 11월부터 본인의 경우 장애등급에 따라 월 200만~225만원, 유족의 경우 월 120만~14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김 센터장은 "이 법은 나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중요한 의미이고, 체육인 복지의 시작점"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이 법없이 30년을 살았다. 내가 된 것이 기쁜 것보다, 나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체육유공자법 시행으로 책무감, 소명감은 더 커졌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상해보험 등 보호장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 의원님과 운동할 때는 알지도 못했다. 친분도 없었다. 이 법을 만들어주시려고 아쉬운 소리, 싫은 소리 해가시면서 동분서주해 끝까지 성사시켜주신 그 진심에 감사드린다. 선배인 이 의원님이 후배들을 위해 이런 법을 만들어주신 것처럼, 나 역시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선배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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