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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런던올림픽 여자역도 75㎏ 이상급 용상 3차 시기 장미란은 170㎏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베이징올림픽 챔피언' 장미란은 메달 획득에 실패한 순간, 조용히 무릎을 꿇고 플랫폼에서 기도를 올렸다. 이어 정든 바벨에 손키스를 하며, 아름다운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골반과 허리, 왼어깨 부상을 딛고 힘겹게 출전한 세 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패배를 인정했고, 기회에 감사했다. '2008년의 챔피언' 장미란도 아름다웠지만, '2012년 무관'의 장미란은 더 아름다웠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패배를 받아들이는 용기와 기품 있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현장, 장미란은 '응원단장'을 자청했다. 선수 은퇴 후 처음 맞는 종합국제대회에서 동료, 선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절친' 박태환의 마지막 레이스가 있던 날, 장미란이 박태환수영장을 깜짝 방문했다. 시상식, 기자회견이 끝난 후 베이징올림픽,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함께 기쁨을 나눴던 '국민남매'가 재회했다. 장미란은 "누나가 한번 안아줄게" 했다. 안방에서 극도의 부담감 속에 금메달 꿈을 이루지 못한 동생 박태환을 말없이 꼭 안아줬다. '힐링'이었다.
'역도 여제' 장미란 이사장(장미란재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스포츠 리더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실력은 물론 올림피언으로서의 품격을 지녔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안다. 헌신과 투혼,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물론, 주위를 유쾌하게 하는 센스 넘치는 화술과 유머감각까지 지녔다.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그녀 안에 고스란히 내재돼 있다. 위대한 선수로서의 삶 못지 않게 선수 이후의 삶이 더 큰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장미란은 지난 2012년 생애 3번째 올림픽인 런던올림픽에서 아름다운 투혼을 보여준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 곧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가 학업의 길을 이어갔고, 지난 2월 용인대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청년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지난 8월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중화전국청년연합회 주최로 열린한중 청년지도자 포럼에 한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청년 지도자 자격으로 참가했다. 지난 9월초 청년위원회 주관 멘토링 프로그램 '청춘순례'에도 참가해 청춘들의 꿈을 응원했다. 2013년 이후 장미란재단 이사장으로서 스포츠 꿈나무와 일반 학생들을 위한 '멘토'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다. 박성현 주현정(이상 양궁) 남현희 최병철(펜싱) 여호수아(육상) 한유미 한송이(이상 배구) 안정환(유도) 등 많은 국가대표 에이스들이 재단 일이라면 앞다퉈 참여한다. 장미운동회, 스포츠 멘토링 캠프 등과 함께, 전, 현직 선수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지원하는 '맞춤형'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역사였던 장미란은 여전히 힘이 세다. '외유내강' 리더의 전형이다. 장미란재단 이사장으로서 선후배 동료 선수들을 장악하는 통솔력은 인상적이다. 꼼꼼하게 계획하고, 세심하게 챙긴다. 강인하고 치밀하다. 한번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 행동력, 카리스마, 리더십을 갖췄다.
'천생 리더 스타일'이라는 말에 장미란은 손사래를 쳤다. "운동하기 전까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했다. 낯도 가리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권유로 훈련 시작 일주일만에 생애 첫 대회에서 1등을 한 후, 고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역도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엘리트 선수로는 상당히 늦은 출발이었다. 중학교때까지는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던 그녀의 인생은 운동을 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성격도 달라졌다. "어렸을 땐 수줍음을 많이 탔다. 말도 잘 못했다. 눈에 띄는 일을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성격이 엄청 바뀌었다"고 했다.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리던 소심한 여학생이 세계를 호령하는 '올림픽 챔피언'이자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년 리더가 됐다. 장미란은 "나는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역도를 하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을 잘하게 되고, 즐기게 되고, 기록이 나오고,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면서 '아, 나도 하면 되는구나'를 발견한 것이 컸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희망'을 드리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훈련하는 것처럼 열심히 하면 세상에 못할 게 없겠다'는 것도 배웠다"고 했다. "역도는 개인종목이지만 배려의 종목이다. 다른 선수가 기록 도전을 시작하면 '화이팅'해주고 다른 선수의 템포를 맞춰 쉬었다 들어가는 우리들만의 룰이 있다. 배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장미란은 여학생들에게 운동과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모님들이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실 텐데, 사실 체력이 뒷받침 돼야 정신력도 좋아지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힘이 없는데 '정신 차려야지' 마음만 먹는다고 되겠나"고 반문했다. "운동은 몸만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고 정의했다.
지난 7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2015 보건상태'(2015 Health Status)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은 인구 10만명 당 29.1명이 자살해, 2013년도 조사 대상 17개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2003~2013년 11년간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을 썼다. 특히 청소년, 청년들의 자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생 2000명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장미란은 치열한 입시경쟁, 극심한 취업난속에 나약한 선택, 위험한 유혹에 빠지는 10대 청소년, 20대 청년들에게 체육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체육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순간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성공했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다음 도전도 성공할지, 실패했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다시 도전할지를 매순간 자연스럽게 배운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지고 이기고 받아들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올바르게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만 해온 아이들은 패배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살다, 더 뛰어난 아이들을 보면 쉽게 좌절한다. 받아들이는 데 힘이 든다. 생활 속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장미란은 절도 있는 여성, 따뜻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다. 후배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선배지만, 정곡을 꿰뚫는 '돌직구' 충고 한마디에는 선배도 후배도 쩔쩔 맨다. 장미란은 "편하고 좋은 누나인데, 때론 무서운 선배다. 운동을 통해 상하관계, 예의, 존중, 배려를 배웠고, 선배의 역할과 후배의 역할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고 했다. "우리는 체육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관계를 배운다. 체육시간 팀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역할을 배우고, 배려를 배운다. 몸으로 부대끼다보면 유대감은 절로 형성된다.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행복한 체육시간은 왕따, 학교폭력, 자살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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