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오직 두 갈래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유럽 진출을 원하던 김신욱(27·울산)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초반만 해도 여러 팀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루머'마저 끊겼다. 미궁에 빠진 이적 속에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김신욱의 활약도 널뛰기다. 주포 부진 속에 울산은 '강등 마지노선'인 10위까지 추락했다. 후반기 대반전을 꿈꾸는 울산의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선 선수단 운영을 책임지는 윤정환 울산 감독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신욱의 유럽행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다수의 에이전트들에게 위임장을 발부해 새 둥지를 모색했지만, '관심'수준에 그쳤을 뿐이다. 여러가지 설이 흘러나왔으나 공식 제의는 단 한 건도 없다. 유럽 뿐만 아니라 중국 슈퍼리그 소속팀들도 가세했다. 하지만 김신욱이 유럽행을 1순위로 내걸면서 이들도 뜻을 접었다.
최근엔 K리그 상위권 구단들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이적과 트레이드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다. 실제 한 팀은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하면서 김신욱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이적은 없다'는 선수 본인의 뜻에 의해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이쯤되자 김신욱도 울산 잔류를 고민 중이다. 유럽행은 새로운 도전이자 자신의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목표였다. 그러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부상 뒤 긴 시간 이어진 부상 속에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를 놓쳤다. 유럽 시장의 높은 문턱도 확인했다. 유럽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유럽 무대에 2m에 가까운 체격을 가진 공격수는 널렸다. 소속팀이나 A매치에서의 활약이 김신욱의 가장 큰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사라졌다"고 제자리 걸음인 원인을 분석했다. 때문에 김신욱도 굳이 무리해서 팀을 떠나기보다 울산에서 내실을 다진 뒤 재도전해도 늦지 않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애매모호한 윤정환 감독의 마음
문제는 윤 감독의 태도다. 김신욱 이적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다. 그저 "좋은 기회가 온다면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유럽, 중국 팀의 제의에 이어 K리그 구단들까지 손을 뻗치는 상황 속에서도 입장엔 변함이 없다.
김신욱은 울산이 키운 한국 축구의 스타다.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시작으로 브라질월드컵과 인천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길을 걸었다. 익을 수록 고개를 숙였다. 매 경기 뒤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의 사인, 사진 공세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올해 울산 구단의 지역 마케팅에 발벗고 나선 것도 김신욱이었다. 때문에 프렌차이즈 스타 김승규(25)와 함께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의 눈높이를 잘 아는 김신욱이기에 '유럽행이 아니면 잔류'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윤 감독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울산 잔류를 원하는 김신욱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전반기 울산 부진 이유 중 하나로 꼽혔던 게 '선수단 장악 실패'였다. 전술적 변화나 로테이션 과정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다. 무승 행진이 계속되는 동안 선수들끼리 '의지'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심동체'는 되지 못했다. 흔들리고 있는 선수들을 바로잡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이적 후보생인 김신욱을 붙잡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선수단에게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2008년 팀 리빌딩 과정에서 선수, 팬들의 거센 반발을 겪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정면돌파였다. 선수 면담 뿐만 아니라 직접 손편지를 써 선수들에게 속마음을 터놓았다. 구단 게시판에 스스럼 없는 문체의 장문의 글을 올려 팬심을 돌려놓기도 했다. 이듬해 전북은 사상 처음으로 K리그 정상에 올랐고, '절대 1강'으로 가는 첫 발을 떼었다. '소통의 힘'이었다.
선수단 운영은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구성원을 추스르는 일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의기투합'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이별'이 윤 감독, 김신욱 뿐만 아니라 울산, 나아가 '김신욱의 부활'을 바라는 한국 축구에게 이득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