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펜서'김승구,7년만에 태극마크 다시 달던 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4-01 18:10 | 최종수정 2015-04-02 08:22



'불굴의 펜서' 김승구(34·화성시청)가 6년3개월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김승구는 31일 서울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열린 2015 국가대표 평가전 남자 에페 결승에서 김희강(익산시청)을 15대7로 완파하고 우승했다. 15번째 칼끝, 불이 반짝 켜진 순간 김승구는 파이팅을 외치며 피스트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찾은 태극마크를 숙연하게 자축했다.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햇수로 7년이 걸렸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인 김승구는 2008년 12월 국가대표 지도자 폭행 사건의 피해자다. 이후 이어진 송사, 협회 내 보이지 않는 편견과 반목 속에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한때 국가대표의 꿈을 아예 접었다. "대표 선발전을 후배들 밀어주려고 열심히 뛰지 않을 때도 있었다. 태릉에 들어와봐야 잘 안될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기치를 내건 정부의 체육단체 개혁 움직임이 거셌다. 대한펜싱협회는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문체부 산하 4대악 신고센터에는 펜싱 관련 민원이 쏟아졌다. 한 실업팀 감독이 목숨을 끊는 아픔까지 겪었다. 손길승 대한펜싱협회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시도 협회를 돌며 펜싱인들을 일일이 면담했다. 문제를 찾아내고, 화합을 이끌었다. 임원진, 코칭스태프도 모두 새로 꾸렸다.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이어졌다.

김승구는 힘든 세월속에서도 칼을 놓지 않았다. 펜싱의 길을 타의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2013년 국내 개인전 3관왕, 2014년 김창환배 2연패 등 국내 무대에서도 정상권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말 대표선발전, 김승구는 마음을 다잡았다. "주변 분들이 기회가 왔다고, 이번엔 꼭 노려보라고 하셨다. 그 부담감이 컸는지 경기날 장염에 걸렸다. 패자 4강에서 탈락했다"며 웃었다. 4개월만에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마음을 비웠다. 승승장구했다. 16강에서 김승재(해남군청)를 15대4로, 8강에서 정태승(한체대)을 15대10으로 돌려세웠다. 준결승에서 양윤진(한체대)을 15대8로 꺾었다.

지난 7년, 김승구는 치열하게 살았다. 2011년 사격선수 출신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오전 오후, 소속팀 훈련을 마치고 나면, 저녁엔 꼬맹이들에게 펜싱을 가르치고, 자투리시간엔 헬스 트레이너로도 일했다"며 웃었다. "있었던 자리로 돌아오는 데 7년이 걸렸다. 때려치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그러나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과 선생님들, 동료, 와이프가 응원해줘서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태릉 밖에서 펜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운동을 하는 일을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면서 내가 했던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맘 편하게 운동만 할 수 있던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펜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백전노장의 태릉 컴백 각오는 결연했다. "들러리를 서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욕심내겠다"고 다짐했다. 리우올림픽을 바라봤다. 올림픽 단체전 엔트리는 4명이다. 김승구는 "톱10에 들어있는 국내 상위 랭커가 3명이다. 나는 랭킹도 없다. 한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첫대회부터 랭킹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몬트리올월드컵 개인전 우승 이후 월드컵 무대에서 5년만에 나서게 된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015년, 김승구의 펜싱인생에 다시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결혼 4년만에 아기가 생겼고, 7년만에 태극마크도 돌아왔다. 김승구는 "아내가 임신 4개월이다. 아기 태명이 '꽁꽁이'다. '꽁꽁이'가 복덩이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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