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강문수 탁구감독"도끼갈아 바늘 만드는 각오로..."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3-16 17:55 | 최종수정 2015-03-23 06:16


강문수 탁구대표팀 총감독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유럽보다 못한, 또하나의 유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강문수 대한민국 남녀탁구대표팀 총감독은 류궈량 중국탁구대표팀 총감독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단-복식 금메달리스트인 류궈량은 중국 탁구의 레전드다. 국내에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김택수 감독과의 결승전 32구 랠리로 유명하다. 지난 연말 중국에서 한중 탁구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양국의 탁구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3월28일부터 제주도에서 한-중 합동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 공식 회동이 끝난 뒤 티타임 자리, 강 감독이 류궈량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한국 탁구에 대해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느냐?" 류궈량의 직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유럽보다 못한, 또하나의 유럽을 보는 것 같다." '승부사' 강 감독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류궈량이 작심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적어도 80~90년대, 한국 탁구의 정신과 체력은 세계적인 것이었다."

'백전노장' 강문수 감독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두고 남녀탁구대표팀 총감독에 올랐다. 1985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태릉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지 30년째다. '독한 승부사'답게 지휘봉을 잡을 때마다 결과를 만들어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유남규, 양영자-현정화의 금메달 현장에 있었고, 삼성생명 감독으로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을 발굴하고 키워냈다. 2001년 파리세계선수권 남자단식에선 애제자 주세혁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과 유독 인연이 많았다. 1986년 서울, 1994년 히로시마, 2002년 부산에서 총 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강 감독은 '적장' 류궈량의 아픈 직언을 인정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가 과거에 중국을 이겼을 때 기술이 앞서서 이긴 적은 없었다. 기술은 뒤질지언정, 체력 정신력에서 뒤지진 않았다. 정신에서 지고들어간 적은 없었다."

2015년 강 감독의 지도철학은 '한국탁구의 기본정신'이다. 유남규 현정화 김택수 유승민 주세혁이 세계를 호령했던 때를 떠올렸다. "옛날 한국탁구의 좋았던 점을 살려내겠다. 과거 한국탁구의 전성기 때 최고의 강점이었던 체력과 정신력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더이상 세계는 한국탁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하나의 유럽'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특훈을 선언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혹독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빈번한 국제 오픈 대회 출전 과정에서 체력 훈련이 중단되는 점도 지적했다. "대회가 많을 때면, 선수들이 보름 이상 체력훈련을 놓을 때도 있다. 기본 체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기술도 실력도 발휘할 수가 없다. 대회 현장에서도 체력을 유지하는 체계적 프로그램을 고안해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신과 체력을 끌어올리면, 기술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봤다.

'63세 현역'인 강 감독은 잠들지 않는 현장형 지도자다. 태릉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든다. 서효원, 박영숙 등 딸같은 선수들의 볼박스도 기꺼이 자청한다. 한때 애제자였던 안재형 이철승 남자대표팀 코치, 박지현 박상준 여자대표팀 코치들에게도 바라는 바도 한결같다. "코치들에게도 좀더 많이, 같이 뛰라는 주문을 한다.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뛰어주길 바란다."

백전노장이 냉정하게 바라본 대한민국 탁구의 현주소는 남자 5~6위, 여자는 6~7위권이다. "남자는 중국, 독일,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대만과는 대등하고, 포르투갈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 올림픽에는 4등이 없다. 무조건 3위 안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탁구는 중국. 일본, 북한, 싱가포르, 독일이 우리보다 앞선다. 홍콩도 우리를 추격중이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표는 리우올림픽 메달이다. "평생을 탁구에 바쳤다. 한국 탁구의 위기에, 내게 남은 마지막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1년반이 야전사령관으로서 마지막"이라고 했다. "결국 좋은 지도자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도자 아니냐"라며 웃었다. "협회와 후배들이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어깨가 무겁다. 불가능한 일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강조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마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세상에 열심히 해서 안되는 일이 어디 있겠나?" 한국탁구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노장의 출사표는 비장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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