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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정치에 휘둘리는 순간 생명력을 잃어 버린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치인들의 입김에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성남시장인 이재명 성남FC 구단주가 먼저 물을 흐렸다. 그는 클래식 최종전을 앞두고 2부 리그에 강등될 경우 FA컵으로 얻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심판 판정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올해 감독을 3명 교체한 과거를 망각했다. 왜 성적이 바닥인지, 그 답을 외부에서 찾았다. 다행히 성남은 생존했다. '전국구 스타'가 된 그의 정치적인 행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성남FC는 없고 '이재명'만 있을 뿐이다. 9일 성남FC의 보도자료 제목도 '성남 이재명 구단주 ACL 위해 예산 증액, 선수 보강한다'였다. 왜 그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절묘한 순간 또 한 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경남FC 구단주인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팀이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경남FC 구단주를 하면서 주말마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시민구단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한해 13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2부 리그로 강등이 된다면 경남FC는 스폰서도 없어지고, 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를 운영하는데 넥센타이어가 40억원을 낸다고 한다. 우리는 130억원의 예산을 쓰고도 넥센의 10분의1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고도 프로축구 구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경남FC는 2부 강등의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그리고 8일 "경남FC에 대해 특별 감사를 한 뒤 팀 해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특별 감사는 홍 지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미래를 위해서는 현주소의 진단은 필수다. 그러나 '팀 해체'를 운운한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경남FC는 홍 지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2006년 어렵게 창단된 경남도민의 자산이다. 쉽게 만들고, 쉽게 해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에 하나 '정치적 계산'으로 경남FC가 해체된다면 이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불행이다.
경남FC는 아팠지만 올 시즌 대미를 장식한 강등 전쟁은 스토리가 있었다. 시민구단 대전이 2부 리그인 챌린지로 강등된 지 1년 만에 클래식(1부 리그)으로 승격했다. 시민구단 광주는 3년 만에 빛을 봤다. 내년 시즌 클래식에 재등장한다. 희비가 극명했지만 프로축구의 숙명이다. 선순환 구조다. "승격과 강등은 축구인의 삶의 일부다." 9일 K-리그 감독들과 만난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말이다. 대전과 광주는 2부에서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통해 이전보다는 더 건강한 구단이 됐다.
2부 리그는 춥고, 배고프다. 강등돼 웃을 팀은 없다. 그러나 자금동원능력에 한계가 있는 시도민구단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경남FC가 내년 시즌 모색해야 할 그림이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필요하다. 축구가 정치적인 격랑을 겪고 있는 데는 축구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시도민구단의 불안한 구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프로축구의 질적 저하로 대다수의 기업구단도 위축돼 있다. 모 기업에서 투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축구가 더 건강해져야 외부의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동이다. 투명한 구단 운영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축구를 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있다. 리그의 관중도 부족하다. 스코어가 중요한게 아니라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축구가 한국에서 펼쳐졌으면 좋겠다." 슈틸리케 감독의 냉정한 평가다. 현업에 있는 축구인들이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