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수비수, 깎신 주세혁(34·삼성생명)의 품격이 빛났다.
주세혁은 인천아시안게임 마지막날인 4일 수원실내체육남자탁구 단식에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원관중이 들어찬 준결승전 '세계랭킹 1위' 중국의 왼손 에이스 쉬신과 맞붙었다. 세계최고 공격수와 세계최고 수비수의 맞대결에 한국팬, 중국팬들의 응원전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주세혁!" "대~한민국!"과 "짜요!"가 번갈아 오갔다. 주세혁은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수비에 능한 쉬신의 마구를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를 앞두고 주세혁은 "쉬신은 수비수를 정말 잘다룬다. 아무리 낮은 커트, 어떤 회전도 다 받아낸다.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중국선수중 가장 탁월하다"고 설명했었다. 1세트를 2-11로 내줬다. 2세트 초반 4-3으로 앞서나갔지만 결국 5-11로 내줬다. 3세트 1-8까지 밀리더니 2-11로 내줬다. 주세혁의 공을 받아내는 쉬신의
1980년생인 주세혁은 우리나이로 35세다. 이정우 김민석 정상은 김동현 등 후배들과 함께 나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탁구 레전드, 맏형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냈다. 남자단체전 은메달 역시 2포인트를 어김없이 따주는 든든한 맏형 주세혁이 있기에 가능했다. 2001년 파리세계선수권 단식 2위, 주세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탁구팬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강 수비수다. 15년 가까이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며, 한국탁구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런던올림픽에서 함께했던 '절친 맏형' 오상은, 대표팀 코치가 된 유승민이 없는 남자탁구,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주세혁의 어깨는 더없이 무거웠다. 남자대표팀은 지난 5월 도쿄세계선수권 단체전 8강에서 대만에게 일격을 당하며 탈락했다. 4단식에서 주세혁의 역전패가 뼈아팠다. 주세혁은 이를 악물었다. 한국탁구의 자존심을 걸었다. 한국탁구의 세대교체기에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했다. 4달만의 리턴매치,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 준결승 대만전은 압권이었다. 낮고 안정적인 커트와 날카로운 드라이브에 대만 톱랭커들이 꼼짝없이 당했다. 남자단식에서도 복수혈전은 계속됐다. 도쿄세계선수권 조별예선 남북전에서 패했던 북한 다크호스 최 일을 32강에서 4대1로 돌려세웠다. 16강에서 홍콩 에이스 장티안위를 4대0으로 완파했다. 일본 톱랭커 미즈타니 준과의 8강전은 명불허전이었다. 미즈타니와의 전적은 4승2패로 앞서 있었다. 올해초 카타르 오픈에서 4대2로 꺾었던 일본 톱랭커와 자신감있게 맞붙었다. 4대2로 꺾은 후 준결승에 올랐다. 미즈타니를 꺾은 것과 관련 주세혁은 "이번 대회 집중이 정말 잘됐다. 첫세트를 따낸 것이 주효했다. 기선제압을 하지 않았다면 흐름이 넘어갈 수 있었다. 내 흐름, 내 포인트가 왔을 때 집중력 있게 실수 안하고 내 것을 한 덕분에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세혁의 쾌거는 런던올림픽 은메달 '원팀'의 연속선상에 있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은 주세혁을 200% 신뢰했다. 주세혁은 "유 감독님은 내 스타일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훈련스케줄이나 모든 것을 믿고 맡겨주셨다. 태릉에서 생활하는 내내 한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마음으로 믿어주셨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런던올림픽 때 '원팀'으로 뛰었던 '한솥밥 후배' 유승민은 남자대표팀 코치로 들어왔다. "유 감독 대신 유 코치가 오히려 자극을 줬다. 내 스타일과 탁구계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조금이라도 나태해질라치면 '형 볼박스를 이정도는 해줘야 한다'며 독려했다"며 웃었다.
인천아시안게임 탁구를 마무리하며 주세혁은 "개인적으로 만족한다"며 웃었다. "단체전도 결승에 올랐고, 개인전에서도 북한 최일, 미즈타니를 꺾었다. 세계선수권 이후 아시안게임에서 설욕을 별르고 있었다"며 웃었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남자선수들이 감동과 투혼의 플레이, 이전과 다른 파이팅을 보여드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원체육관을 가득 메운 탁구팬들의 뜨거운 응원은 큰 힘이 됐다. 매경기 매표소마다 2시간 넘게 줄을 늘어섰다. '깎신' 주세혁의 명품 플레이는 대회 기간 내내 탁구팬들 사이에 화제였다. 주세혁은 "많은 관중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됐다. 지친 순간에도 응원소리에 힘을 냈다"며 웃었다. 두아들 지민(9) 지호(7)도 자랑스런 아빠의 플레이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세계최강 수비수' 아빠는 두 아들에게 나눠줄 2개의 메달을 따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