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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폴란드전 승리 한국 낭자들 "왕언니 복수했어요"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4-08 14:57


동점골에 성공한 한국대표팀이 즐거워하고 있다. 아시아고(이탈리아)=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들 얼싸안고 기뻐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더니 스마트폰부터 찾았다. 다들 열심히 터치스크린을 두드렸다. '슝~'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SNS로 메시지를 보냈단다. 누구에게 보냈냐고 물었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우리 왕언니요!"라고 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7일 밤(이하 한국시각) 이탈리아 아시아고에서 열린 2014년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 A 2차전에서 폴란드를 잡았다. 수문장 신소정의 선방에 힘입어 승부치기 끝에 3대2(1-1, 0-1, 1-0, 0-0 승부치기<1-0>)로 이겼다. 한국은 전날 열린 뉴질랜드전에 이어 승부치기로만 대회 2연승을 거뒀다. 한국은 폴란드와의 맞대결에서 단 한차례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사상 첫 폴란드전 승리 뒤에는 '왕언니'가 있었다. 선수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왕언니'는 지난해 선수은퇴를 선언한 이영화(36)였다.

2012년 3월이었다.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B 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폴란드와 우승을 다투고 있었다. 이영화는 상대 선수의 심한 보디체크에 빙판위에 놔뒹굴었다. 일어나지 못했다. 들것에 실려 나갔다. 병원에 도착해 검진을 받았다. 오른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전방과 후방, 내측까지 완전 다 나갔다. 한국은 연장전까지 접전 끝에 졌다. 라커룸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패배보다도 왕언니의 부상 소식에 엉엉 울었다.

이영화는 항상 어린 선수들을 친동생처럼 챙겼다. 30대 중반이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선수들에게 롤모델이기도 했다. 이영화는 복귀를 선언했다. 수술 후 8개월간 재활에 매진했다. 재활 도중 2012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예선에도 따라갔다. 뛰지못해도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런 이영화를 위해 선수들은 폴란드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다짐했다. 하지만 2대3으로 졌다. 이영화는 2013년 스페인에서 열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그룹B에 출전했다. 이영화의 활약 덕에 한국은 우승을 맛보았다. 그룹A로 승격했다. 이영화는 대회가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무릎 부상의 여파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날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영화 언니를 위해 이번에는 꼭 이기자"고 다짐했다. 현실이 됐다. 다들 "왕언니 복수 제대로 해주었어요. 진짜 통쾌해요"라고 했다. 한국은 꼭두새벽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메시지를 보낸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괜찮아요. 오늘 우리 기분 언니는 이해할 거에요. 아마도 더 좋아할걸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시아고(이탈리아)=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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