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뜨거운 겨울,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2-25 07:52


13일 오후(한국시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가 열렸다. 준준결승에서 한국 심석희가 힘차게 트랙을 돌고 있다.
한국은 이번 소치 올림픽에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 종목에 동계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인 선수 71명을 파견했다. 임원 49명을 포함한 선수단 규모도 120명으로 역대 최대.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는 한국은 메달 12개(금 4개·은 5개·동 3개)를 수확, 2006년 토리노·2010년 밴쿠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종합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치(러시아)=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2.13.



뜨거운 겨울이었다. 그들의 몸짓 하나에 눈물을 흘렸고 또 웃음 지었다. 우리는 그들이 있어 행복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꼽았다.

아디오스 '연아'

23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갈라쇼는 떠나는 여왕을 위한 축제였다. 모든 선수들이 여왕을 가리켰다. 전광판에는 태극기가 아로새겨졌다. 빙판 위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엠블럼이 펼쳐졌다. 관중들도 박수를 쳤다. TV를 지켜보던 국내 팬들 역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끝으로 17년간의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기적 그 자체였다. 7세 때 처음으로 은반과 만났다. 한 길만 걸었다. '점프의 정석'이 되기까지 1800㎡의 차가운 빙판을 수만번 뒹굴었다. 허리, 무릎, 발가락까지 고통이 없는 곳이 없었다. 역사를 써갔다.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 불멸의 대기록(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총점 228.56점)을 작성했다. 은퇴도 생각했다. 1년여의 방황 끝에 다시 돌아왔다.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소치에 나서기로 했다.

소치에서의 성적은 은메달이었다. 러시아의 홈이점과 러시아 심판은 해도 너무 했다. 대놓고 편파판정했다. 김연아는 합계 219.11점에 그쳤다. 1위는 러시아였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224.59점을 기록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전세계가 분노했다. 모두들 김연아가 금메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김연아 본인은 무덤덤했다. "끝나서 홀가분하다. 쇼트와 프리 둘 다 큰 실수없이 마무리했다. 모든 게 다 끝나 행복하다"며 웃을 뿐이었다. 팬들은 인터넷 공간에 '연아야 고마워'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제 여왕과는 작별이다. 아디오스 연아.

빙속여제, 이상화 새 시대를 열다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도전자는 없었다. 기량은 월등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는 1000분의 1초 승부다. 잠시라도 리듬을 놓치면 레이스를 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은 이상화가 출발하던 순간 사라졌다. 12일 소치 아들러 아레나에서 이상화는 마지막 조로 나섰다. 1차 레이스 100m 랩타임은 10초33. 가장 빨랐다. 결국 이상화는 37초2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차 레이스 1위였다. 2차 레이스는 더 좋았다. 100m 랩타임은 10초17, 최종 기록은 37초28이었다. 당연히 모든 선수 가운데 최고의 기록이었다. 합계 74초70으로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보니 블레어(미국·1988캘거리~1992알베르빌~1994릴레함메르)와 카트리나 르 메이돈(캐나다·1998나가노~2002솔트레이크시티) 이후 처음 나온 2연패였다.


최종병기 심석희의 폭풍질주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내심 금빛 질주를 기대했던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는 경기 중 넘어지는 불운이 계속됐다. 금맥을 전혀 캐지 못했다. '빅토르 안' 광풍도 불었닥쳤다. 팬들의 질타는 그 어느때보다 매서웠다.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여자 500m에서 동메달, 1500m에서 은메달에 그쳤다. 18일 여자 3000m 계주 결선은 마지막 보루였다. 다들 '필사즉생'의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1위를 달리던 한국은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중국의 저우양에게 추월을 허용하며 위기에 봉착했다. 해결사는 최종병기 심석희였다. 심석희는 반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에서 거침없이 달렸다. 폭풍 질주에 500m 금메달리스트 리지안누를 나가떨어졌다. 첫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5분 08초052. 역전우승이었다. 심석희는 팀동료들과 펑펑 울었다. 17세 소녀는 "정말 짜릿했다"며 웃었다. 그는 "중간에 변수도 있었지만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상황에서 집중하자고 스스로 주문했다. 제쳤을 때 너무 좋았다. 그동안 다같이 고생했는데 웃을 수 있어 기쁘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승훈, 12위에서 은메달까지

23일 소치 아들러 아레나. 이승훈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좌절은 경험할 대로 경험했다. 보름 전 일이 스쳤다.

올림픽 첫 날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 나섰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전국민적인 관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발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자신보다 앞서 달린 스벤 크라머 등 네덜란드 3총사의 기록도 신경쓰였다. 출발 총성이 울렸다. 쉬지 않고 달렸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6분25초61. 26명 가운데 12위였다.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경기장을 떠났다.

그래도 금새 생기를 되찾았다. 다음날 인터뷰에서 이승훈은 "허무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올림픽은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지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훌훌 털어버렸다. 효과는 열흘 뒤 1만m에서 나왔다. 5000m 금메달리스트 크라머와 함께 달렸다. 역주를 펼쳤다. 13분11초68. 4위였다. 동메달과는 불과 4초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희망을 봤다.

이승훈은 머리 속에서 바로 과거를 지웠다. 옆을 쳐다봤다. 후배인 주형준과 김철민이 있었다. 팀추월 결승에 나섰다. 상대는 세계 최강 네덜란드였다.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쳤다. 대등하게 갔다. 16바퀴를 도는 경기에서 7바퀴까지는 별반 차이나지 않았다. 8바퀴째부터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가기로 했다. 3분40초85. 네덜란드에 2초14 뒤졌다. 하지만 웃음이 났다. 이승훈은 후배들을 끌어안은채 말했다. "잘했다. 그리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평창이 기다리고 있어."

여자 컬링, 깜짝 스타 탄생

2010년 밴쿠버대회때까지만 해도 컬링은 생소한 종목이었다. 얼음판 위에서 돌을 밀고 난 뒤 빗자루질을 해대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신기하면서도 우스운 종목', 팬들에게 컬링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치에서 컬링은 새로 태어났다.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진출했다. 첫 경기부터 승승장구했다. 숙적 일본을 깼다. TV로 생중계됐다. 이슬비는 귀여운 외모로 스타덤에 올랐다. 컬링 규칙을 묻는 이들도 많아졌다. 스위스와 스웨덴에게 2연패했지만 컬링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4차전에서 러시아를 상대해 8대4로 이겼다.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중국에게 3대11, 영국에게 8대10, 덴마크에게 4대7로 지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상대로 1승1패를 했다. 3승6패로 8위를 기록하며 첫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비록 4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미 컬링은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모바일 세상에서는 컬링 게임까지 나왔다. 22일 귀국한 컬링대표팀은 수많은 환영 인파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장격인 김지선은 "응원 많이 해주셨는데 아쉽다"고 입을 떼며 "이번 올림픽에서 강팀들은 부담없이 스톤을 던진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도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4년간 노력하면 실력이 더 늘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다. 이슬비는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채워서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며 "당장의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성원을 위해 힘쓰겠다. 평창 대회 때까지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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