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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빼앗긴 올림픽 금메달이다.
김연아(24)는 모든 무대가 막을 내린 후 끝내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판정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온 국민의 마음은 더 아팠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얼룩졌다. 금메달은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차지했고, 김연아는 러시아를 제외한 전세계의 완벽한 연기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은메달이었다.
하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대한체육회의 대처는 실망스럽다. 이의제기를 할 시점을 실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식 불복 절차를 위해선 김연아나 대한빙상연맹이 직접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김연아는 진흙탕 싸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 미련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빙상연맹은 다르다. 즉각적인 검토와 대응을 해야했다. 하지만 안일했다. 여론이 들끓자 하루가 지난 뒤에야 오타비오 친콴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에게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여자 싱글이 정당하게 치러졌는지 정중하게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친콴타 회장이 확인하겠다고 답변했다는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수시간 후 ISU는 홈페이지를 통해 다른 반응이 나왔다. ISU는 '판정이 매우 엄격하고 공정하게 이뤄졌고,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적합한 조치가 모두 이뤄졌다'며 '심판진은 13명의 심판 중 서로 다른 연맹을 대표하는 9명이 랜덤으로 선택되고 여자 프리스케이팅 경기에는 캐나다, 에스토니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의 심판이 포함됐다. 평균을 맞추기 위해 최고점과 최하점은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여자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대한 어떤 공식 항의도 받지 못했다. ISU는 판정 시스템이 공정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시상대에 오르긴 전 ISU에 이의제기를 한 후 기각될 경우 곧바로 제소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타이밍도 놓쳤다. 스포츠중재재판소로 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소치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의 김재열 단장은 빙상연맹의 수장이다. 그는 23일(한국시각) "이의제기는 ISU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조치했다. 앞으로도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며 "참고로 이의제기와 관련해서는 ISU 규정이 까다롭게 돼 있다. 충분히 숙지를 하고 적합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폭풍은 이미 지나간 뒤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과거 판정이 번복된 사례는 있다. 그 때도 러시아였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에서 러시아의 엘레나 베레즈나야-안톤 시하룰리드제 조는 한 차례 점프를 실수했지만 클린 연기를 펼친 캐나다의 제이미 살레-다비 펠레티에 조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판정 논란이 일었고, 프랑스 심판 마리 렌느 르군느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채점하라는 프랑스빙상연맹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러시아와 캐나다에 공동 금메달을 수여하며 '피겨 판정 사건'을 서둘러 봉합했다. 하지만 김연아의 경우는 현재로선 '번복 가능성은 없다'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의 지휘관리 능력에도 물음표가 달렸다. 빙상연맹의 문제로 간과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체육회는 빙상연맹과 별도로 판정 논란에 유감을 표명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IOC 차원의 적절한 조치 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한은 서한일 뿐이다.
국민은 상처를 받았고,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솜방망이 대응으로 제대로 치유해 주지 못했다. 한국 스포츠 외교력의 현주소였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