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을 맛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준비한 4년이 온갖 논란에 묻혔다. 동계올림픽하면 쇼트트랙이었다. 가장 많은 메달을 수확하며 온 국민에 기쁨을 선물한 과거는 없었다. 금메달은 당연한 듯 했다. 비리 집단으로 전락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남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세계 최강 여자 쇼트트랙은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나날이 눈칫밥이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달랐다. 내일은 더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1500m와 1000m 세계랭킹 1위 고교생 심석희(17·세하여고)는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견이 없는 1500m '금메달 0순위'였다. 하지만 허를 찔렀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저우양(중국)의 '영리한 몸싸움'에 역전을 허용했다. 은메달이었다. 노련미에 당했다. 올림픽의 벽을 느꼈다고 했다. 겉으로는 만족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독기를 품고 달리고 또 달렸다.
1500m와 1000m 세계랭킹 2위 김아랑(19·전주제일고)은 미소를 잃지 않는 천사다. 하지만 얼마나 중압감이 컸던지 1500m를 앞둔 전날 새벽 급성 위염으로 배앓이를 했다. 박승희가 기권한 마당에 쉴 수 없었다. 그는 준결선행을 확정지은 후 눈물을 쏟았다. 극심한 고통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결국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여자 쇼트트랙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맏언니' 조해리(28·고양시청)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후배들이 눈물을 흘릴 때, 아플 때 늘 곁을 지켰다. 품에 안았다. 백전노장인 조해리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했다. 하지만 '노골드'였다. 그 악몽은 여전히 남았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25·서울시청)가 손글씨로 쓴 응원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 다치지만 말아줘 이미 당신은 최고'라는 플래카드를 들어보였다. 선수들의 함께 적혀 있었다. 마침내 쇼트트랙에서 금맥이 터졌다. 밴쿠버의 한을 넘어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조해리 박승희 심석희 김아랑이 짝을 이룬 여자 쇼트트랙대표팀은 18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팰리스에서 벌어진 3000m 계주 결선에서 중국을 넘고 정상 고지를 재탈환했다. 4분09초498이었다.
중국과 엎치락뒤치락했다. 3위까지 밀리기도 했다. 중국이 선두였다. 막내이자 간판인 심석희가 마지막 순간 역전에 성공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후 4명의 태극 여전사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최광복 코치도 포효했다. 한국과 1위를 다투던 중국은 실격이었다.
3000m 계주는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 대회를 필두로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대회까지 4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2010년 밴쿠버 대회는 통한의 무대였다. 박승희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조해리는 주축이었다. 이은별(23) 김민정(28과 함께한 3000m 계주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석연찮은 심판 판정으로 실격했다. 중국에 금메달을 빼앗겼다. 예기치 못한 악몽에 모두가 눈물을 쏟았다.
조해리 박승희 심석희 김아랑은 드림팀이다. 지난해 11월 17일 3000m 러시아 콜롬나에서 벌어진 월드컵 4차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새롭게 작성했다. 4분06초215였다.
쇼트트랙에 터진 첫 금메달로 한국은 18일 현재 금2, 은1, 동1를 기록했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