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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못 딴 것은 아쉽지만 괜찮다. 결국 이것도 실력이다."
박승희(22·화성시청)가 13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벌어진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에서 54초207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이상화(25·서울시청)에 이어 한국 선수단에 두 번째 메달을 선물했다.
출발 자리도 똑 떨어졌다. 준결선에 가장 빨린 결승선을 통과한 박승희는 1번에 위치했다. 500m는 자리싸움이 첫 번째 승부처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시련이 기다렸다. 부정 출발로 무겁게 첫 발을 뗐지만 선두를 꿰찼다. 하지만 두 번째 코너를 돌다 넘어졌다. 엘리스와 폰타나가 자리다툼을 하다 엘리스가 박승희를 쓰러뜨렸다. 펜스에 강하게 부딪힌 그는 일어나 레이스를 이어가려다 또 넘어졌다. 마음이 바빴다. 되돌릴 수 없었다. 단거리라 회복되지 않았다. 4명 중 맨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엘리스가 실격을 당하면서 동메달이 돌아갔지만 아픔이 큰 일전이었다. 리지안러우의 금메달, 폰타나의 은메달은 변하지 않았다.
방송 믹스트존 인터뷰를 먼저 마치고 등장한 박승희는 오열했다. 감정을 추스린 후 "동메달을 따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가족 얘기가 나와서…"라며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한 후 다시 훌쩍거렸다. 사연이 많은 선수다. 소치에는 삼남매가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언니 박승주(24·단국대)는 스피드스케이팅, 남동생 박세영(21·단국대)은 쇼트트랙 대표다. 그는 "선수촌에서 언니와 거의 붙어산다. 상화 언내가 룸메이트인데, 오늘 경기에 잘하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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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서 두 번 넘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넘어진 후 빨리가야지 하고 일어났는데 마음이 급해서 또 넘어졌다. 넘어진 것도 실력이다. 두 번 넘어져 창피했다"며 다시 웃음을 찾았다. 최광복 코치에 따르면 컨디션이 절정이었다. 페이스가 좋아 내심 금메달도 기대했지만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박승희는 "남자 선수들이 앞에서 경기를 하는 것을 봤다. 부담이 됐다. 집중하자고 했다. 잘해야 된다고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고 했다.
여자 500m에선 16년 전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메달이었다. 전이경(38)이 1998년 나가노대회(일본)에서 여자 500m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어부지리였다. 당시 전이경은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결선 출전 4명 중 3, 4위가 실격을 당하며 행운이 찾아왔다. 전이경은 순위 결정전에서 1위를 차지해 운좋게 시상대에 올랐다.
박승희가 정상 절차를 그친 사실상 첫 500m 메달리스트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취재진의 설명에 "정말요. 저 잘한거죠?"라고 반문하며 해맑게 웃었다.
박승희는 4년 전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밴쿠버 대회에서 3000m 계주에서 실격하며 금메달을 놓쳤다. 그는 "그 때의 눈물과는 차이가 있다. 어린 마음에 정말 아까웠고 너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사실 동메달도 못 딸줄 알았다. 물론 아쉬움은 있지만 메달을 딴 것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을 쓰러뜨린 엘리스에 대해서는 "참 착한 친구다. 나쁜 마음은 있지 않다. 그런데 나보다 더 울고 있더라. 내일이나 모레 찾아올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직 경기가 더 남았다. 마음을 추스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