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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운동을 그만두게 했더라면, 내 아이의 병을 일찍 알았더라면.
'~했더라면', '~할 걸', 뒤늦은 회한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애꿎은 부모의 가슴을 짓누른다. "중학교때 (노)진규가 대퇴부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펜스에 부딪히는 모습이 가슴아팠다. 그때 운동을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노진규 어머니 송소저씨의 눈가가 빨개졌다. 소치 하늘 아래 얼음과 싸워야 할 아들은 지금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에서 어깨위 암세포와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다.
스스로 잘 자라준, 기특한 남매는 부모의 자랑이었다. 고단한 노동, 힘겨운 삶 속에서도 트로피만 보면 세상 시름이 걷혔다. "그게 우리의 낙이었죠." 아버지 노일환씨가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로서 우리는 늘 고맙고, 미안했어요. 애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부모로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가족은 꿈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했다. "세상이 참 마음대로 안되는 거네요. 두 아이가 함께 소치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고 이제야 좀 살 만하구나 안도하는 순간 이런 일이…." 노씨가 고개를 떨궜다.
처음엔 자란 혹을 잘라내는 시술로 생각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1시간 반쯤 흘렀을까. 의사가 '보호자'인 어머니를 수술실로 호출했다. '악성종양'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그만 정신이 아뜩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했다. 4시간 대수술 후 마취에서 깬 아들은 "수술이 잘 됐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차마 진실을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냉정했다. "악성종양, 골육종입니다." 노진규는 물었다. "엄마, 나 죽는 거야?" 소년은 그렇게 꼬박 하루를 울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울지 않았다.
소치동계올림픽이 개막하던 8일 노진규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병실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며칠새 먹은 것도 없이 수십번을 토했다. 구토를 하면서도 리모컨을 놓지 않았다. 10년을 꿈꿔온 올림픽, 어깨에 13㎝ 혹을 매달고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무대다.
9일 누나 노선영의 스피드스케이팅 3000m 경기를 기다렸다. 중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했다. TV를 꺼버렸다. 10일 밤 남자쇼트트랙 1500m는 노진규의 주종목이었다. 2011년 노진규가 수립한 세계최고기록을 지난 3년간 아무도 깨뜨리지 못했다. 노진규는 이한빈, 박세영, 신다운 등 동료들을 플레이를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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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노진규는 오른손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왼쪽어깨와 왼팔골절 수술로 왼손을 쓸 수 없다. 정성을 다해 오른손으로 대표팀 동료들을 위한 응원 메시지를 꾹꾹 눌러썼다. '1500m는 운이 많이 안따라 준 것같아. 아직 남은 경기가 많이 있고 단체전인 계주가 남았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늘 연습해오던 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해줬으면 좋겠어. 서로서로를 믿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모두 웃으면서 돌아왔으면 좋겠어. 여자들도 긴장하지 말고 해오던 대로만 하면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까 마지막까지 화이팅하자!' 노진규의 마음은 소치 하늘 아래 동료들과 함께 있었다.
공릉동(서울)=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