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스토리]탁구신동 신유빈의 폭풍성장,최연소 우승 뒷이야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8-23 08:36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망울, 생긋 웃는 입매가 깜찍한 아홉살 꼬마숙녀는 녹색테이블 앞에만 서면 '못말리는 승부사'가 된다. 1m36의 작은 키로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리는 드라이브에 머리 하나는 더큰 5~6학년 언니들이 속수무책 당하는 광경은 마치 만화같다.

다섯살 때인 2009년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놀라운 재능을 선보였던 '탁구신동' 신유빈(군포 화산초)이 가능성을 성적으로 입증해보였다. 18일 막을 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종별학생탁구대회 초등부 여자단식, 고학년 언니들을 줄줄이 돌려세웠다. 초등학교 3학년으론 최초로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전국대회 최초, 최연소 우승의 위업이다. '탁구신동' 신유빈의 '폭풍성장'이다.

'탁구신동' 신유빈 초등부 최연소 우승하던 날

여자 초등부 단식 무대, 신유빈의 적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랭킹 1-2위'로 꼽히는 홍순수, 이승미(이상 천안용곡초 6학년)가 동아시아호프스대회 출전 때문에 불참했다. 송곳 드라이브, 당찬 스매싱, 침착한 경기운영으로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28강, 64강에서 윤희수(부천 삼정초 6), 변서영(경기 새말초 4)을 각각 3대0으로 가볍게 꺾었다. 32강 이다은(서대전초 5)과의 맞대결에선 2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3세트를 내리 따내는 뒷심을 보여줬다. 16강, 8강에선 6학년 언니 윤세희(대구 동인초) 송현정(나주 중앙초)을 각각 3대0, 3대1로 제압했다. 준결승에서 권연희(경북 포은초)를 3대0(11-9, 11-2, 11-4)으로 완파했고 결승에 올랐다. 한솥밥 선배인 5학년 유한나(군포 화산초)와 풀세트 접전끝에 3대2(11-4, 9-11, 12-10, 11-9, 13-11)로 승리하며 전국대회 초등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탁구뿐 아니라 어떤 종목에서도 전국대회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 고학년을 줄줄이 제치고 우승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깜찍한 얼굴에 강심장 갖춘 '어린 천재'

신유빈은 대한탁구협회 주관 대회에서 장내 진행을 담당하는 '탁구인 아버지' 신수현씨의 둘째딸이다. 아빠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돌 무렵부터 탁구를 놀이삼아 성장해왔다. 중국 대회를 다녀온 올해,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5월 중국 산둥성 연령별 경기에도 참가해 중국선수들을 누르고 준우승했다. 또래끼리 치고받는 랠리가 이어지면서 "탁구가 정말 재밌다"는 말을 연발했다. 탁구가 또 늘었다. 올해초 경기도 교육감기 겸 대통령기 시도탁구 경기도 선발전에선 전종목 우승의 쾌거를 일궜다. 학년 구분 없이 진행된 오픈 단식에서 5~6학년 '언니'들을 모두 꺾었다.

동그란 얼굴의 깜찍한 '꼬마아가씨'는 대선수의 필수요건인 떨림없는 '강심장'을 지녔다. 불과 1년전만 해도 박빙의 경기땐 울면서 라켓을 휘두를 때도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질까봐 무서워서" 눈물이 절로 났다. "울어도 내가 할 건 다해요." 당찬 소녀는 울면서도 자신의 플레이를 끝까지 해냈다. 같은학년 대회에선 단한번도 진 적이 없다. 무실세트,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더 강해졌다. 이번 대회 32강전은 최대의 승부처였다. 상대 이다은은 대통령기 맞대결에서 한차례 패배를 경험한 까다로운 언니였다. 탁구에서 2세트를 먼저 내주고 3세트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위기에서 신유빈의 진가가 드러났다. 거침없는 공격으로 끝내 역전승을 이뤄냈다. 무슨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똘망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포기 안하고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어요."

유빈이는 다음주 가족과 함께 중국 전지훈련을 떠난다. 중국에 가면 신이 난다. 비슷한 수준의 또래 선수들과 경기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또한번의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신유빈 프로젝트'가 필요해

부산아시아선수권에서 함께 시범경기를 가진 혼합복식 챔피언 이상수(삼성생명) 역시 "와! 잘하는데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메달리스트 출신 스타 탁구인들도 '신동' 신유빈의 가능성을 대번 알아봤다. '탁구영웅'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은 "유빈아, 허리를 돌리는 거야, 어깨를 쓰는 게 아니고…"라며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원포인트 레슨을 자청한다. 신유빈이 훈련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찾는 삼성생명탁구단 체육관에서 틈틈이 볼박스를 해주는 이은실 코치(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재능이 남다르다. 집중력도 뛰어나다. 어린나이답지 않게 드라이브가 아주 매섭다"고 칭찬한다. 유빈이를 지도하는 정운민 화산초등학교 코치 역시 "유빈이는 장차 한국탁구를 짊어질 선수다. 이미 기술, 파워 모든 면에서 중학교 2~3학년 수준이다. 지도자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영재다. 포어핸드드라이브, 수비력 모두 갖췄다. 지도자로서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아버지 신수현씨는 "부모로서 처음엔 '내딸이 신동이 맞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유빈이가 성장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꿈도 커졌다. 탁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유빈이가 중국을 이기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며 웃었다.

어린 천재를 키워내고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일본 탁구계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전략적 스타'로 성장한 '아이짱' 후쿠하라 아이(25)의 예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24~25일 양일간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동아시아호프스 대회가 열린다. '아이짱'도 이대회를 거쳤다. 유승민, 마롱 등이 거친 탁구스타의 등용문이다. 국내 유망주 30명이 무더기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신유빈의 최연소 출전을 기대했다. 경기도대회 4관왕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했지만, 고학년으로 출전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에 묶여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탁구영재들을 위한 맞춤형 훈련과 지원, '신유빈 프로젝트'가 절실하다. 주니어대회, 카뎃 대회 참가횟수를 늘려 어린 나이부터 국제대회 경험을 쌓아줘야 한다. 세대교체 과도기속에 침체된 한국 탁구계에 실력과 스타성을 두루 겸비한 '어린 천재' 신유빈의 '폭풍성장'은 놓쳐서는 안될 호재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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