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숨은무기' 정성현교수를 아시나요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3-08-07 07:07


정성현 안동대 교수가 과학적인 분석 기법을 개발해 한국 배드민턴의 도약에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세계배드민턴개인선수권대회에 참가중인 한국 선수단에 유난히 바쁜 이가 있다.

이 사나이는 중국 광저우 톈허체육관에서 한국 선수가 출전할 때마다 코트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관중석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그리고 한국 선수의 플레이를 매의 눈으로 관찰하다가 'R1', 'R2'처럼 알파벳-숫자가 조합된 암호를 외쳐댄다. 그러면 선수들은 흠칫 눈빛이 달라진다. 이른바 '마인드 컨트롤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다.

이 사나이는 정성현 안동대 체육학과 교수(41)다. 한국대표팀이 이번에 비장의 무기 조련사로 초빙한 인물이다. 정 교수는 스포츠심리학 전문가로 이번에 한국대표팀에서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 기법을 적용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배드민턴 성인대표팀이 '심리분석의 힘'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교수는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선수 입장을 잘 알아 맞춤형 상담이 가능하다. 3개월전 부임한 이득춘 감독이 주니어대표팀 시절 3년간 정 교수의 도움을 받았던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이득춘 체제를 출범하면서 한국 배드민턴의 재도약 을 달성하기 위해 '스포츠과학기술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탄생한 것으로, 이번 대회가 첫 시험무대다.


정성현 교수가 중국 광저우 톈허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 상황을 관찰하고 있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이상한 암호의 정체는?

정 교수는 선수들에게 외치는 암호에 대해 "선수들과의 지속적인 상담과 비디오 분석을 통해 여러가지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상황에 따라 필요한 프로그램 수행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사고중지 프로그램과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사고중지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선수들이 경기 중 실수를 저질러 실점했을 때 자꾸 머릿속에 떠올리지 말고 빠른 시간 안에 잊어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어찌보면 선수들에게 가혹하다. 과거 자신들이 했던 경기 가운데 패했던 장면을 분석해서 왜 패했는지에 몰두하게 만든다. 처절하게 자기 반성을 하고 나면 그 상황에서 상대 선수는 어떻게 해서 승리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그려보도록 한다. '지피지기', '전화위복'의 교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이 세뇌될 정도로 꾸준하게 주입을 해야 명령이 떨어지면 약속된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매일 밤 선수들과 면담을 갖고 시시각각 바뀌는 심리 상태를 파악한 뒤 실전에서 가동할 프로그램을 약속한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그동안 대표팀 선수들 모두의 과거 경기 장면 영상 수천개를 분석했다. 정 교수는 "수많은 경기 장면을 분석하면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고, 신바람을 내는지 선수들 특성에 맞는 패턴이 나온다"면서 "이를 토대로 경기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 따라 암호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단 이어폰에 숨겨진 비밀

이번 대회에 참가중인 선수들은 이동할 때나 경기 직전에 이어폰을 늘 꽂고 다니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수영 스타 박태환이 경기에 앞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휴대폰에 많은 음악을 다운받아 놓고 듣는 것으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때 박태환이 착용했던 헤드폰이 인기상품으로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배드민턴 선수들은 다르다. 설렁 설렁 음악 감상이나 하자고 이어폰을 꽂는 게 아니다. 정 교수와 약속한 프로그램 때문이다. 정 교수는 1년간의 연구를 통해 '음파 뇌자극' 기법을 개발했다. 행동을 지휘하는 뇌에 도움이 되는 음파를 주입해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 교수가 개발한 음파는 '안정성', '집중력', '안정성+집중력' 등 3가지 유형이다. '안정성' 유형은 운동선수의 두뇌 활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감마파는 떨어뜨리고 알파파를 증대시킨 것이다. 알파파는 쉬고 있을 때 나오는 뇌파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강하게 나온다. 여기에 학습처럼 뇌가 어떤 정신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나오는 베타파를 활성화하는 음파를 개발해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정 교수는 이들 음파를 선수들의 휴대폰에 저장해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듣도록 권유했단다. 정 교수는 "배드민턴은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운동이다. 이제 도입하는 단계이지만 선수들이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경기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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