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랭킹 1위와 100위의 희한한 라이벌.'
이들 둘은 남자단식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개막 첫날(5일) 1라운드(64강)을 가볍게 통과한 이들은 결승에서 맞붙을 것이 확실시 돼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다.
단연 관심도에서 보면 린단이 우세다. 자신의 고국에서 벌어지는 대회이다 보니 린단이 등장할 때마다 톈허체육관 안팎에서는 함성이 울려퍼진다.
린단은 중국에서 국민적인 영웅이다. 성적부터가 화려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남자단식 2연패를 달성했다.
반면 리총웨이는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린단에게 발목을 잡혀 은메달에 머무는 등 린단 앞에서는 늘 2인자였다. 둘의 맞대결 전적에서도 린단이 21승9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린단이 출전하지 경기는 리총웨이가 지배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호랑이가 없을 때 여우가 왕노릇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이번 대회에서 린단의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래서인지 리총웨이도 중국 현지에서는 린단에 버금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덩달아 받는다.
한데 이들 두 스타 사이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세계랭킹에서의 차이는 정반대였다. 흔히 배드민턴 세계랭킹의 차이는 웬만해서 넘기 힘든 벽으로 여겨진다.
배드민턴은 철저하게 개인 기량으로 승부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랭킹이 월등하게 높은 선수가 하위 선수에게 패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단은 화려한 개인 성적과 달리 이번 대회에서 공인된 세계랭킹은 100위에 불과했다. 세계 1위의 주인공이 리총웨이다.
랭킹으로 보면 100위 짜리가 감히 1위의 라이벌이 된다니 말도 안되는 것 같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특유의 랭킹 포인트 산정 방법과 린단의 유별난 행태 때문이다. BWF는 세계랭킹을 산정할 때 최근 1년간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쌓은 포인트를 기준으로 한다.
선수 개인의 통산 누적 포인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린단은 지난 1년 동안 국제대회에 2번밖에 출전하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우승으로 랭킹 포인트 1만2000점을 얻었고, 지난 4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면서 3850점을 보탠 게 전부였다. 린단은 배드민턴 최고 상금(100만달러·약 11억원)이 걸린 코리아오픈프리미어대회(1월)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재 랭킹 포인트가 1만5850점으로 5만152점이나 획득한 리총웨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리총웨이는 린단과 달리 1년간 꾸준히 각종 오픈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도맡아 하며 포인트를 가득 쌓아 올렸다.
우승 제조기인 린단이 이처럼 은둔생활을 한 이유는 뭘까. 배드민턴계에 따르면 린단은 이미 중국 대표팀 감독도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콧대가 높아질대로 높아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자기 입맛에 맞는 대회를 골라가면서 출전한다는 것. 설렁 설렁 대회를 골라가면서 출전을 해도 언제든지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이 깔려있는 것이다.
여기에 상금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다. 리총웨이같은 상대적인 약소국 선수들은 각종 오픈대회에서 성적에 따라 지급되는 상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린단은 중국에서도 소문난 스포츠 재벌이다. 배드민턴계에서 나오는 소문에 따르면 린단의 재산은 200억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 영웅으로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데다, 각종 광고 모델로 활동하면서 벌어들인 재산이다. 린단은 용품 스폰서로부터도 적지 않은 사례비를 받고 스폰서 용품을 착용할 정도로 등급이 엄청나게 높다. 그런 그가 오픈대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신혼생활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린단은 지난해 9월 중국 여자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인 시에싱팡과 성대한 결혼식을 가졌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곧장 결혼 준비에 들어갔고, 결혼 후에도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기 위해 국제대회 출전을 고사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지난 1월 코리아오픈을 개최할 때도 중국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불참 사유가 '신혼생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고만장하게 국제대회에서 사라졌던 린단이 자신의 역사적인 개인기록이 달린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나타났다. 린단과 리총웨이의 대결에 세계 배드민턴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