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펜서'최수연,인대파열 아픔 딛고 다시 날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6-28 06:30 | 최종수정 2013-06-28 06:30


◇ '미녀 펜서 '최수연이 8개월만에 돌아온 전국종별선수권에서 3위에 올랐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시련을 딛고 나선 첫 대회에서 보란듯이 건재를 과시했다. 26일 소속팀인 로러스엔터프라이즈펜싱클럽에서 칼을 겨누며 포즈를 취했다. 한남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미녀 펜서' 최수연(23·로러스엔터프라이즈)이 돌아왔다. 25일 경북 김천에서 막을 내린 전국종별펜싱선수권 여자사브르 3위에 올랐다. 지난해 전국체전 경기 도중 미끄러지며 왼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후 8개월만의 복귀전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가장 빛나는 순간 찾아온 십자인대 파열 '악몽'

최수연은 '펜싱 사브르' 명문 부산 동의대 에이스 출신이다. 대학 최강급 실력을 자랑하며 전국 규모 대회에서 순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실력과 미모를 갖춘 대학부 에이스로 손꼽히며,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년 전 중국 선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선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이라진과 함께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로러스 엔터프라이즈 펜싱팀을 이끄는 정규영 대학펜싱연맹 회장이 그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펜싱스타'로 성장할 재목으로 판단했다.

일찌감치 실업행을 확정짓고 꿈에 부풀어 있던 지난해 10월, 예기치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동의대 선수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 여자 사브르 8강전, 경기중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힘든 동작도 아니고 '마르셰(걷기)' 를 하는데 갑자기 무릎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고 일어섰는데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부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에 갔는데 차트에 영어만 잔뜩 써있었다. 옆에 간호사 언니에게 물었다. 십자인대가 끊어졌다고 했다. 엉엉 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재활기간이 1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절망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김지연 이라진 윤지수 등 사브르 동료, 선후배들은 국내외 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산이 높을수록 골도 깊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왔을까,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상실감 속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펜싱 경기를 보기도 싫었어요. 하기도 싫었고요." 움직임이 많은 사브르 종목에서 빠른 다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국의 펜싱을 '발펜싱'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대부상은 치명적이었다. 두번 다시 칼을 잡지 못할 줄 알았다.

중학교 시절 처음 칼을 잡은 이후 펜싱은 그녀에게 삶의 전부였다. 부모님의 불화로 외롭고 힘들었던 사춘기를 펜싱의 힘으로 버텼다. 또다시 찾아온 시련의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엄마'였다. 허리디스크를 앓으며 삼남매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에게 펜싱 국가대표 딸은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펜싱으로 엄마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고 싶다'던 어릴 적 꿈을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절박했다.

절박했던 복귀전 '깜짝 3위' 힐링매치


최수연은 지난 24일 전국펜싱종별선수권 사브르 개인전에 나섰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깜짝 3위에 올랐다. 8개월만에 그녀가 보란듯이 돌아왔다. 펜싱계가 술렁였다. 검을 다시 잡은 지 불과 한달만의 일이다. 부상 트라우마 탓에 런지 같은 큰 동작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수비적인 자세로 기다려선 승산이 없었다. 작전은 '닥공! 닥치고 공격'이었다. 영리하게 기다리며 상대의 타이밍을 뺏은 후 전광석화처럼 공격포인트를 파고 들었다. 예선전을 3위로 통과했다. 32강 본선 시드를 꿰찼다. 기대 이상이었다. "다들 '네가? 시드를 받았다고?'라며 놀라더라. 복귀전이니까 잘 못할 거라고들 생각했던 것같다"고 했다. 16강에서 여자대표팀 라이벌 유재연(충남체육회)을 만났다. 자존심을 걸었다. 12-12 듀스 상황, 최수연은 간절했다. 두선수가 동시에 찌르는 '악시옹 시뮬타네'가 무려 10번이나 반복됐다. 듀스 접전, 치열한 승부속에 그녀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불 하나만 켜지게 해주세요.' 필사적으로 다리를 찢으며 내민 그녀의 칼이 상대를 살짝 건드렸다. 공격포인트로 인정됐다. 거짓말처럼 그녀쪽 불이 '반짝' 들어왔다. 그리고 결국 승리했다. 8강에선 '절친' 팀동료이자 남자 플뢰레 국가대표인 김민규(23·로러스엔터프라이즈)가 승리를 도왔다. 5-8로 밀리던 상황, 관중석에서 그녀를 응원하던 김민규가 팔을 흔들어댔다. "수연아, 너 이기면 이 팔찌 줄게." 그녀가 평소 눈독 들인 명품팔찌였다. 팔찌 응원이 통했다. 꿈같은 4강 진출을 이룬 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했다.

그녀의 깜짝 재기에 동료, 스승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팠던 것 맞아? 더 좋아진 것 같다"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넸다. 정작 최수연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시련을 겪으며 성숙해졌다. 조급했던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젠 더 먼 미래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첫 복귀전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 역시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때 펜싱을 쳐다보기도 싫었던 내겐 '힐링 매치'가 됐다"며 웃었다. "복귀전 3위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신명나게 피스트를 누빌 날을 꿈꾸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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