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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선수시절, 이렇게 체계적인 공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복식 정상에 선 '원조 스포츠 요정' 현 전무는 지난해 43세의 나이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런던올림픽 직후, 역시 탁구대표 출신인 남편 김석만 전 감독과 딸 서연(12), 아들 원준(10) 등 온가족이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총감독으로 일해온 한국마사회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USC에서 7개월째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현 전무의 유학에는 이 학교 재단 이사인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대한항공 회장)의 도움이 컸다. 조 회장이 총장에게 직접 추천서를 써줬다.
2년 전 국제탁구연맹 미디어위원으로 선출됐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현 전무는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조 회장은 '한국의 유능한 스포츠 인재가 미래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맞춤형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썼다. 현 전무는 영어공부에 미쳐있다. 27일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두 아이를 옆에 앉힌 채 영어단어 암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세계 1등의 승부욕과 집념은 녹색테이블 앞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하루 5시간 수업, 일주일에 2~3번 시험을 보는 빡빡한 스케줄을 단 한번도 빼먹은 적 없다. "요즘 밤을 새가며 공부한다. 덕분에 두번째 학기엔 전체 2등을 했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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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전무가 캠퍼스를 오가며 자주 들르는 존 맥케이 센터는 '부러움' 그 자체다. '공부하는 선수'라는 USC의 모토에 충실한 최첨단 건물이다. 미식축구팀의 전설적인 감독 존 맥케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건물은 지난해 8월 총 7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됐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1층에 스티븐스 학술센터와 최첨단 멀티미디어 강의실이 눈에 띈다. 스티븐스 학술센터의 프로그램은 매력적이다. 650명의 선수들 모두가 1대1 맞춤형 교육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다. 이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교수와 학생이 1대1로 만난다. USC체육부 산하 21개팀 650명의 선수들이 제집처럼 편안히 드나든다.
USC는 세계적인 스포츠 명문대다. 1904년 하계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총 418명의 학생이 135개의 금메달, 87개의 은메달, 65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미국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메달을 딴 학교다. 런던올림픽에서도 41명의 USC출신 선수들이 참가해 12개의 금메달을 포함, 총 25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200m 평영 금메달리스트인 레베카 소니, 런던올림픽 여자육상 3관왕 앨리슨 펠릭스가 이 학교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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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운동만 잘하는 학생들이 아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표본이다. 미국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규정과 지침에 따라 '학생선수(Student Athlete)' 들은 엄격한 학사관리를 받는다. 일정 학점을 넘기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평균성적(B학점) 이상이 돼야 팀에 잔류할 수 있다. 학점 미달시, 출전이 제한된다. 학업에 소홀할 경우 팀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막막한 선수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30~40대 이후 운동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가야할 선수들을 위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학업 지원 스태프 18명이 종목별로 나뉘어 일주일에 3~4회씩 선수들을 만난다. 학습법을 조언하고, 학습부진에 대한 맞춤형 과외를 실시한다. 첫 1년간은 시간관리법을 가르친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릴지, 시험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노트정리는 어떻게 하는지, 공부와 관련된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알려준다. 선수들은 러닝 카운슬러(Learning Counseler)와 시간활용법, 강의선택 방법을 꼼꼼히 상의한다. 러닝카운슬러 8명 중 7명이 운동선수 출신이다. 선수의 삶을 이해하는 만큼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다. 수업 중 이해가 가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은 80명의 자원봉사 학생들이 지원하는 튜터링(개인과외)을 통해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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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전무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보통 태릉에 있는 선수들은 6~8시간 정도 훈련한다. 24시간 중 8시간 운동하고, 8시간 자고, 8시간 쉬는 것이 기본이다. 체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운동량을 늘리는 게 다가 아니다. 문제는 집중력이다. 짧게 하더라도 얼마나 집중해서 하느냐가 중요하다. 선수시절, 시간활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8시간 휴식시간을 공부에 활용했다면 이렇게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로스앤젤레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