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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배드민턴계는 연말이 두렵다고 한다.
지난 7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이른바 '고의패배' 파문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다.
으레 연말이면 각종 매체에서 한해 동안의 스포츠를 결산한다. 이 결산에서는 '베스트', '워스트'나 각종 사건·사고를 되짚어 본다.
'워스트'와 사건·사고의 우선 순위로 런던올림픽의 '고의패배' 파문이 거론될 게 확실시된다.
배드민턴계는 런던올림픽 사건 이후 숱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지도자와 선수들에 대한 강력한 징계로 수습을 했지만 연말에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됐으니 반가울 리 없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고의패배' 스캔들에 연루된 여자복식 선수 4명은 '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당초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내린 징계(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 국내대회 출전정지 6개월)는 이보다 강력했는데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 여론 때문에 대한체육회가 그나마 경감시켜준 것이었다.
런던올림픽을 이끌었던 성한국 감독과 김문수 코치도 당초 자체 상벌위원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가 협회의 최종심사에서 '국가대표 지도자 자격정지 4년'으로 간신히 구제됐다.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지도자와 선수는 배드민턴계에서 일시 퇴출된 상태다.
하지만 한국만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모양이다. 배드민턴계를 통해 확인할 결과 '고의패배'의 주범이었던 중국은 무풍지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런던올림픽 '고의패배'는 중국이 초래했다는 것은 당시 외신 보도를 통해서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세계랭킹 1위인 위양-왕샤오리조는 여자복식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의 정경은-김하나조를 상대로 노골적인 져주기 경기를 했다. 같은 중국팀 동료인 텐칭-자오윈레이조와 결승에서 맞붙도록 대진을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한국의 정경은-김하나조가 상대의 어이없는 플레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불성실한 경기 자세로 대응했다가 '고의패배' 스캔들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결과로 보면 한국이 잘한 행동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질타와 함께 징계가 뒤따랐다. 이에 비해 중국은 여전히 염치가 없었다.
자국 협회의 강력한 자체 징계가 있었던 한국과 달리 중국은 '고의패배' 연루자에게 은글슬쩍 면죄부를 주었다.
런던올림픽 이후 첫 프리미어급 국제대회인 지난달 덴마크오픈(10월 16∼21일)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은 깜짝 놀랐다. 런던올림픽 중국 국가대표를 이끈 리융보 감독을 비롯해 위양-왕샤오리가 버젓이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당시 왕샤오리가 부상 때문에 현장에서 출전을 포기한 까닭에 실제 경기를 치르지 않아서 그렇지 이들은 모두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끝난 2012 중국오프 배드민턴 슈퍼시리즈에서는 위양-왕샤오리조가 여자복식 결승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파악한 결과 중국의 지도자와 선수들은 '고의패배' 사건으로 귀국한 이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금메달을 따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에서 유리한 대진을 받기 위해 져주기 경기를 한 것은 다른 종목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 비난할 게 못된다", "서구 언론이 비난한다고 덩달아 자체 징계를 하면 국익에 도움안된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양은 런던올림픽에서 실격 조치된 뒤 은퇴까지 선언했지만 흐지부지 번복했다. 리융보 감독은 귀국한 뒤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져주기 게임은 내가 결코 시킨 일이 아니다. 고의 패배에 대한 실격 처리는 너무한 것이었다"고 되레 큰소리를 치기까지 했다.
그런 중국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국제대회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대한배드민턴협회는 혹독하게 치렀던 홍역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