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위기의 배드민턴 임시 감독 선임 속사정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8-26 11:13


김중수 감독이 위기의 한국 배드민턴을 구출할 구세주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왼쪽)이 올해 초 한국에서 벌어진 코리아오픈을 관전하고 있다. 최만식 기자


"총대를 멨다."

김중수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52)은 다시 지휘봉을 잡게된 소감에 대해 이렇게 첫마디를 시작했다.

이른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흔히 '독이 든 성배'라는 비유는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한 대회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명장이 될 수도 있으나, 재기불능에 빠지기도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 이후 히딩크의 바통을 이어받은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들이 이같은 질곡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김중수 감독이 받아든 '독이 든 성배'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축구의 '성배'는 독이 든 줄 알면서도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을 내는 것이지만, 이번 배드민턴의 '성배'는 서로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김 감독이 총대를 메는 비장한 마음으로 국가대표 사령탑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여기서 비롯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런던올림픽에서의 '져주기 파문' 징계안을 최종 심의한데 이어서 경기력향상위원회를 개최했다.

런던올림픽을 지휘했던 성한국 감독과 김문수 코치가 국가대표 자격정지 4년의 징계를 받았으니 공석이 된 감독직을 맡아줄 인물이 필요했다. 런던올림픽의 충격을 하루 빨리 추스르고 당장 9월부터 일본오픈 등 국제대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신임 감독 선임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협회의 경기력향상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김중수'란 이름 석자를 거명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뒤 코치로 거닐고 있던 성 감독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현재 상황에서 김 감독 외에는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성 감독의 잔여임기 4개월((2012년 12월까지)의 한시직이다. 향후 근무 성과에 따라 협회와 재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보장된 임기는 그것 뿐이다. 게다가 한국 배드민턴은 역사상 최고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초유의 져주기 스캔들에 휘말렸고, 역대 최악의 올림픽 성적(동메달 1개)을 냈다.

이같은 겹치기 악재로 인해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정재성 이현일 등 대표팀 은퇴 예정자가 있기 때문에 선수구성도 새로 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배드민턴대표팀의 감독자리 만큼은 맡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진작부터 흘러나왔다. "시쳇말로 완전히 X밟는 타이밍인데 누가 맡고 싶어하겠느냐"는 게 한 관계자의 솔직한 설명이었다.

결국 이같은 주변 정황은 '김중수 대세론'을 굳히게 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기도 하지만 최근까지 대표팀을 지휘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안다. 무엇보다 김 감독은 위기탈출 전문가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에도 한국 배드민턴은 '노골드(은-동메달 각 1개)'의 수모로 큰 위기를 겪었다.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연속 금메달 2개를 획득한 터라 용납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이 때 구조요청을 받고 지휘봉을 잡은 이가 김 감독이었다. 그는 2010년까지 두 차례 올림픽을 거치면서 2개의 금메달(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 2008년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을 비롯해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일궈내며 '효자종목'의 전통을 회복시켰다.

협회는 시드니의 충격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경험이 있는 김 감독에게 이번에도 다시 '위기탈출 넘버 원'의 솜씨를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결국 김 감독은 "당신밖에 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경기력향상위원들의 말에 거절한 명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김 감독은 "협회 이사이자 전직 감독으로서 대표팀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2001년 처음 감독을 맡았을 때보다 훨씬 부담스럽다"면서 "일단 실추된 배드민턴 이미지를 회복하고 이용대의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