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3일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이 획득한 메달 28개(금13, 은8, 동7) 중 78.5%인 22개(금10, 은6, 동6)가 10대 그룹이 후원한 종목이라고 홍보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쏠림현상'이 대단히 심각하다. 우리나라가 출전한 22개 종목 가운데 양궁(현대차), 사격(한화), 펜싱(SK), 육상(삼성), 핸드볼(SK), 체조(포스코), 탁구(한진) 등 7개 종목의 협회장을 10대 그룹의 최고경영자(CEO)가 맡고 있다. 10대 기업이 후원했다는 메달 22개 가운데 사격(금3 은2), 펜싱(금2 은1 동3), 양궁(금3 동1) 등 3종목에서 집중된 메달이 무려 15개다. 10대 기업이 후원했다는 10개의 금메달 중 8개가 이 3종목에 쏠려있다. 10대 기업이 슬쩍 함께 묻어가기에는 스스로 돌아볼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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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박태환-장미란, 10대 기업이 나서라
세계 5위의 성적에 안주하기에는 한국 스포츠의 4년 후 비전은 대단히 불투명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올림픽 금메달이 국가와 기업의 마케팅 및 이미지 제고에 미치는 효과는 두말 하면 잔소리다. 삼성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두산 등 대한민국 10대 기업들이 보다 분발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런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또 한세대가 지나간다. 박태환(수영) 장미란(역도) 황경선(태권도) 진종오(사격) 등 아테네, 베이징, 런던에서 '메달 전선' 전면에 나섰던 기특한 선수들이 전성기를 지난다. 당장 '포스트 박태환' '포스트 장미란'이 눈에 띄지 않는다. 4년 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위한 인재를 지금부터 발굴, 육성해야 한다. 양궁 태권도 펜싱 사격만으로는 안된다. 결국은 돈과 투자, 의지의 문제다. 기업의 든든한 후원이 선수들의 경기력과 자신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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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이 '금2 은1 동3'의 개가를 올리던 날,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을 만났다. 메달을 딴 펜싱 대표팀 선수들은 인터뷰마다 이구동성 "협회의 지원"을 이야기했다.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감사 표시였다. 손 회장에게 "회장님은 사업가인데, 펜싱을 이렇게 열렬히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유럽에서 펜싱을 잘하면 친구가 된다. 스포츠를 함께 하면 친구가 된다"고 돌려 답했다. 비인기 종목 지원이라는 '대의'는 기본이다. 올림픽 금메달이 유럽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내다본 스마트한 '투자'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펜싱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펜싱 코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중장기 계획 '비전 2020'을 수립해 매년 11억~13억원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온 SK텔레콤의 '주가'도 함께 상승했다.
'도마의 신' 양학선의 대한민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 뒤에는 회장사 포스코건설이 있었다. 지난 30년간 체조협회 회장사를 맡아왔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4년을 준비했다"고 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난해 7월 코리아컵 고양국제체조대회였다. 전세계 최정상급 체조선수들을 초대했다. 같은 기간 국제체조연맹(FIG) 심판위원들을 한국으로 초대해 난도 7.4 기술에 대한 확실한 홍보도 마쳤다. 이어진 지난 10월 도쿄세계선수권에서 양학선이 공중에서 세바퀴를 비틀어내리는 신기술을 완벽히 수행하며 우승했다. FIG 규정집에 신기술로 공식등재됐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과정은 치밀했고, 애정은 지극했다. 정동화 대한체조협회장은 1억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확실한 동기부여를 했다. 정 회장은 회식자리에서 늘 건배사로 "노란 것(금메달)을 위하여!"를 외쳤다. 양학선이 런던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떴다. 잘 키운 선수 하나, 열 아파트 안부러운 '효과'를 얻었다.
태릉에서 함께 훈련하는 선수들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 따라 사기가 왔다갔다 한다. 입는 것, 먹는 것,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같은 선수도 완전히 달라진다. 런던올림픽, 펜싱의 약진이 이를 증명한다. 12일(한국시각) 복싱에서 감격의 은메달을 목에 건 '아빠복서' 한순철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용품이나 유니폼 등 지원이 부족했다. 우리도 든든한 '빽'이 있다면 좀더 신나게 운동할 수 있을 것같다"고 했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