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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탁구 대표팀 '베테랑 삼총사' 오상은(35·대우증권) 주세혁(31·삼성생명) 유승민(30·삼성생명)의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 끝났다. 9일 런던 엑셀노스아레나에서 열린 중국과의 단체전 결승에서 0대3으로 패하며,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승민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유승민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뷰티모델 출신 이윤희씨와 결혼한 유승민은 지난 3월 첫 아들 성혁이를 얻었다. 프로투어 일정과 태릉선수촌 훈련으로 일주일에 한번도 보기 힘든 아들과 가족사진을 늘 메신저 메인화면에 올려놓았다. 오상은-주세혁 외에 남은 한장의 티켓을 놓고 유남규 감독은 고심을 거듭했다. '백전노장' 유승민이냐, '차세대' 김민석이냐를 놓고 위궤양이 올 만큼 고민했다.
그러나 유승민은 올림픽 챔피언다웠다. 꿈의 런던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몫을 해냈다. 아테네올림픽 단식 금메달,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은메달까지 거머쥐며 금, 은, 동을 따낸 유일한 한국선수로 기록됐다. 경기직후 인터뷰에서 아들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아들 앞에 떳떳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 나중에 이 메달을 보고 아빠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주세혁 '베체트병을 딛고 올림픽 첫 메달'
'세계 최강의 수비수' 주세혁은 올해 초 헝가리, 카타르, 쿠웨이트오픈 등에서 잇달아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랭킹이 5위까지 상승하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이어갔다. 헝가리오픈에선 세계 최강 장지커를 준결승에서 4대0으로 완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 무렵 오상은은 올림픽 전망에 대해 웃으며 답했었다. "'주깎신' 있잖아요. 걱정 마세요." 지난 4월 예기치 않은 병마가 찾아오기 전이다. 주세혁은 난치병인 베체트병(류머티스성 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았다. 걷지도 못할 만큼 격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4~5월 두달간 훈련을 전혀 하지 못했다. 승인받은 스테로이드 약물로 아픔을 참아가며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남자단식 1회전에서 탈락하며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베테랑의 힘은 강했다. 중국과의 단체전 결승, 유승민에 이어 한국의 2번 주자로 나선 한국 톱랭커 주세혁은 특유의 끈질긴 커트 플레이로 올림픽 챔피언 장지커를 괴롭혔다. 첫세트를 5번의 듀스끝에 9-11로 내줬고 2세트를 11-5로 잡아내는 박빙의 경기를 펼쳤다. 10년 넘게 국가대표로 뛰어온 주세혁은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투혼의 은메달로 마지막 올림픽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됐다. 그는 "행복하다. 노장들을 끝까지 믿어주신 유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웃었다.
오상은 '해고의 아픔 딛고, 맏형의 힘으로'
오상은은 쿨하다. 지난 일에 연연하거나 매달리지 않는다. "세상만사 다 그런 거죠"라며 툭툭 털어내는 스타일이다. 그런 털털함이 때론 무성의함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성격일 뿐이다. 오상은은 서른다섯의 나이에도 세계 최강의 백드라이브를 구사하는 남자탁구의 '레전드'다. 지난해 말 10년 가까이 몸담은 소속팀 KGC인삼공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고의 태업'이 이유였다. 런던올림픽의 해, 무적 상태로 마땅한 훈련장도 없이 태릉선수촌에서 10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지내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친한 선배이자 스승인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유 감독은 중국을 마지막까지 피할 수 있는 2번 시드 확보를 올림픽 필승 전략 삼았다. 지긋지긋한 동메달 색깔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전략이다. 일본오픈에서 선전하며 2위 독일을 끌어내릴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랭킹포인트를 쌓기 위해 지구 반대편 브라질오픈행을 결정했다. '맏형' 오상은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목표했던 2번 시드를 손에 넣었다. 오상은은 "끝까지 오픈대회에서 랭킹을 끌어올리느라 연습량이 부족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유 감독님의 판단이 옳았다. 나이 많은 사람 이야기는 무조건 들어야 된다"며 허허 웃었다.
유 감독은 결승전 직후 인터뷰에서 "고참들에게 '보따리 싸서 나가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베테랑 삼총사가 200% 이상을 해줬다"며 웃었다.
'베테랑 삼총사'의 아름다운 도전이 끝났다. 고난을 이겨낸 노장들의 투혼은 빛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메달, 대한민국 올림픽 탁구 사상 3번째 은메달이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