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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레슬링 바보' 김현우, 시작부터 에이스였다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2-08-08 17:36


7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런던 엑셀 노스아레나2에서 열린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 결승전에서 타마스 로린츠(헝가리)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한 김현우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우는 8년 만에 한국 레슬링 금사냥에 성공했다. 20120807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m

"현우는 슬로우 스타터이기 때문에 예선만 잘 통과하면 메달을 딸 확률이 높다."

방대두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이 내린 김현우(24·삼성생명)에 대한 평가다.

힘과 체격은 세계 정상급이다. 기술만 보완한다면 오랫동안 세계 정상을 지킬 큰 '물건'이라는 평가였다. 방 감독의 예상은 단 한가지만 빼고 다 적중했다. '슬로우 스타더'라는 예상 말이다. 김현우는 방 감독의 예상과 달리 예선부터 결승까지 화끈한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작부터 에이스였다. 마치 그의 인생처럼…. 그리고 2012년 한국 레슬링의 진짜 에이스로 떠 올랐다.


7일 오후(현지시간) 런던엑셀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레슬링 66kg급의 김현우가 결승에서 헝가리 선수를 꺾고 우승한 후 태극기를 들고 포효하고 있다.120807.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E
시작부터 에이스였다

초등학교때 유도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뛰어난 운동 센스로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감독의 권유로 운동복을 갈아 입었다. 이때부터 그의 '레슬링 사랑'이 시작됐다. 매트 위에 흘린 땀방울만큼 돌아오는 결과에 매혹됐다. 유도로 운동을 시작한 탓인지 '들어 던지기'는 기술이 탁월했다. 레슬링에 발을 들이자마자 선배들을 들어 던졌다. 중학교때부터 각종 국내외 대회 1등을 휩쓸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발견이었다. 레슬링계에서는 환호를 외쳤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세의 나이에 베이징올림픽 출전을 꿈꿨다. 그러나 2008년은 승승장구하던 그가 인생에서 첫 좌절을 겪은 해이기도 하다. 체중조절에 실패하며 대표 선발전 출전조차 좌절됐다. 그는 이때부터 땀의 힘을 믿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나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사람이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라"며 호언장담한 이유다. 세상은 그를 '깜짝 금메달'이라고 하지만 레슬링계에서는 이미 준비된 금메달이었다. 그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메달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실력으로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12월 런던에서 열린 프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김현우는 '레슬링 바보'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난 8개월간 오직 레슬링만 생각했다. 새벽에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훈련을 했고 오전에는 웨이트로 몸을 만들었다. 오후에는 라이벌만을 생각하며 기술을 집중 점검했다. 그가 흘린 땀은 기어코 하늘을 감동시켰다.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레슬의 에이스로 떠 올랐다. "레슬링은 내 삶의 전부이고, 레슬링을 통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레슬링 사랑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7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런던 엑셀 노스아레나2에서 열린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 결승전에서 타마스 로린츠(헝가리)를 꺽고 금메달을 획득한 김현우 선수가 환호를 하고 있다. 김현우는 8년 만에 한국 레슬링 금사냥에 성공했다. 20120807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m
8년만에 금맥 이은 김현우, 비결은 체력

올림픽에서 레슬링은 한국의 전통적인 메달밭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이후 대회마다 한 개 이상의 금메달을 수확했던 한국의 효자 종목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추락의 시작이었다. 32년만에 '노골드' 수모를 당하더니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며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그래서 2012년 런던올림픽의 키워드는 '명예회복'이었다. 방대두 레슬링대표팀 감독은 "두 번 실패는 없다. 런던에서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먼저 부진의 원인부터 찾았다. 체력과 상대 전력 분석 부족이 문제였다. 해답은 두 갈래였다. 선수들은 체력을 향상시키고 코칭스태프는 상대 전력 분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방 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경기 방식이 바뀌었다. 새 규정에 의하면 1분 30초동안 스탠딩으로 점수를 못따면 30초간 파테르를 해야 한다. 반면 점수를 따내면 2분간 스탠딩만으로 경기를 할 수 있다"며 "한국 선수들은 스탠딩에 강하다. 점수를 따서 2분동안 쉴새없이 공격해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상대를 지치게 할 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승사자'로 불리는 안한봉 코치가 대표팀에 합류해 체력 훈련을 담당했다. 레슬링 대표팀의 훈련은 막 그대로 '지옥 훈련'이었다. 김현우는 "언덕 대쉬 훈련(200m 언덕을 정해진 시간안에 10회 왕복하는 훈련)을 하고 나면 하늘이 노랗고 제정신이 아니다. 처음에는 구토도 많이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지옥훈련' 덕분에 김현우는 힘과 근지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특히 김현우는 최대 근력이 뛰어난데 이를 짧은 시간에 집중시켜 발휘하는 파워가 부족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이를 보완하는 맞춤훈련을 소화했고 순간 파워가 향상됐다"고 밝혔다. 코칭스태프는 밤에 비디오 자료를 통해 상대 분석에 매진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에 대한 분석 자료가 차고 넘칠 정도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레슬링대표팀은 런던으로 향했다. 메달 후보로 꼽혔던 그레코로만형의 최규진(27·조폐공사)과 정지현(29·삼성생명)이 잇따라 메달획득에 실패하며 불안감이 조성됐지만 '비밀 병기' 김현우가 있었다. 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엑셀 레슬링 경기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태극기를 들고 매트 위를 돈 김현우의 금메달 세리머니였다. 한국 레슬링에 8년간 침묵했던 금맥이 다시 터진 순간이었다. 2012년은 한국 레슬링 옛 명성 회복의 원년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런던 제외)를 따냈던 한국 레슬링의 화려한 역사가 김현우로부터 다시 시작됐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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