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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의 종주국' 유럽의 중심에서 빛나는 칼의 노래를 불렀다. 한국 펜싱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5일 현재 '세계 최강' 이탈리아(금2, 은2, 동2)에 이어 2위다. 1일 최병철의 플뢰레 첫 동메달 이후 2일 정진선(에페 동), 김지연(사브르 금) 3일 여자 플뢰레 단체(동), 4일 남자 사브르 단체(금), 5일 여자 에페 단체(은)에 이르기까지 닷새동안 릴레이 메달을 따내며 펜싱코리아의 위용을 과시했다. 출전한 9개 종목 중 남자 사브르 개인전을 제외한 8개 종목에서 4강에 올랐고, 단체전 전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7개, 2011년 일본 와카야마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9개의 신화는 유럽 최강자들이 총출동한 런던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 펜싱은 도대체 왜 강한가, 세계 펜싱계가 주목하고 있다.
연습, 또 연습
대한민국 펜싱대표팀의 지도자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1996~1997년 국가대표 코치 출신을 역임한 김용율 감독은 '한국형 발 펜싱'을 이야기했다. 태생적으로 팔이 길고 손기술이 좋은 유럽선수들을 손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체격조건이 좋은 경쟁국들에 맞서 빠른 발과 거리조절 등 감각을 키우는 훈련에 골몰했다. 많은 움직임에 필요한 체력과 하체 강화를 위해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옥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실시했다. 오십줄에 들어선 김 감독이 직접 선수들과 피스트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열정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광기 펜싱협회 실무 부회장과 강화위원들이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훈련일지를 꼬박꼬박 챙겼다. 몸은 힘들었지만 분위기와 투지만큼은 최고였다. 힘든 훈련 속에 부상 위험도 상존했다. 훈련장 화이트보드에 누군가 '나는 기계다. 나는 아프지 않는다'고 썼다. 결연했다. 피끓는 청춘들이 태릉에서 쏟아낸 땀과 눈물은 고스란히 메달의 영광으로 돌아왔다.
비전 2020, 전폭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대한펜싱협회장인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이 넘도록 종일 경기장을 지켰다. 현장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가장 큰 목소리로 응원을 주도했다. 열정적이었다. 펜싱코리아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비전 2020'을 언급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김종 교수팀에 1억원 외주를 주고 체계적인 연구를 의뢰했다. 그 결과 2012년 런던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20년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한국 펜싱의 비전이 그려졌다. 이후 매년 11억~13억원을 유럽 전지훈련 및 해외 월드컵 경기 참가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했다. 1년에 6개월 이상 루마니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 머물며 선진 펜싱을 체득했고, 빈번한 대회 참가를 통해 '피스트 울렁증'을 없앴다. 심판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됐다. 2012년 1단계 목표는 금1 동3이었다. 런던올림픽에서 금2 은1 동3을 따내며 1차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신아람 오심 사건, 최병철의 반전 동메달
대회 초반 분위기는 무거웠다. 믿었던 남현희와 구본길의 개인전 부진, 신아람의 1초 오심 사건까지 터지면서 분위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위기였다. 김용율 펜싱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여태까지 어떻게 훈련해 왔는지 생각하라. 우리가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지 않느냐. 피스트에서 쓰러져 죽을 각오로 뛰어라." 다음날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최병철의 동메달이 터졌다. 비장하게 뛰었다. 오심으로 상처 입은 동료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동료 의식이 펜싱대표팀을 하나로 결속시켰다. 매일매일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한목소리로 "신아람의 오심이 자극이 됐다. 우리를 똘똘 뭉치게 했다"고 증언했다. 위기를 정면돌파하며 통곡의 피스트를 환희의 피스트로 바꿔놓았다.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