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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의 금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끊겼다. 무려 24년간 노골드 종목이었다. 그 한이 이번에는 풀릴까. 한국복싱은 신종훈(23·라이트플라이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5일 오전 5시15분(한국시각) 런던올림픽 16강전에서 알렉산드로프(불가리아)와 첫 대결을 펼친다.
신종훈은 어릴적 '아가'로 통했다. 초등학교(구미 광평초) 6학년 때 또래 보다 체격이 턱없이 적었다. 3학년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 꼬마가 몸이 날렵했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았다. 고향 경북 안동 시골 마을 나무에도 다람쥐 처럼 자주 올라갔다. 교내 달리기를 하면 신종훈이 단거리와 중장거리를 가리지 않고 1등을 차지했다.
그랬던 그가 복싱 국가대표가 돼 2012년 런던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복싱 최경량급인 라이트플라이급(49㎏미만)에서 현 세계랭킹 1위다. 중국의 저우쉬밍(31)과 함께 금메달을 다툴 유력한 우승 후보다. 시드를 받아 32강전을 건너 뛰었다. 신종훈의 첫 경기는 5일(한국시각) 벌어지는 16강전이다. 상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종훈의 부모는 1남3녀 중 둘째인 아들이 교사가 되길 희망했다. 그는 8세때 아버지를 따라 안동에서 구미로 이사왔다. 신종훈은 공부 보다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광명초 6학년때, 아들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엄마(엄미자씨)는 담임교사를 만나 아들을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키가 발목을 잡았다. 신종훈이 또래 보다 머리 하나 정도 적었다. 아버지(신영만씨) 엄마도 모두 키가 작았다. 그렇게 축구선수의 꿈은 접었다. 현재 신종훈의 키는 1m68. 체중은 49㎏.
별명이 '아가'로 불렸지만 달리기는 매번 1등
그가 복싱을 접한 건 구미 신평중 2학년때였다. 친구 7명과 구미시민운동장에 갔다가 복싱 선수들의 훈련을 보고 홀딱 반했다. 그때 처음 만난 지도자가 평생의 스승인 김진호 순회 코치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바로 신종훈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주먹을 뻗어보이는 동작을 흉내냈다.
부모는 말렸다. 복싱은 취미로 하고 공부를 하길 원했다. 그런데 신종훈의 빠른 발과 날쌘 몸놀림을 본 김 코치가 열정을 보였다.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신종훈 집으로 3번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리고 4번째 찾아가 부모의 허락을 얻었다. 김 코치는 신종훈이 복싱으로 성공하겠다는 열정을 보고 더 큰물로 보냈다. 당시 장흥민 감독이 이끌었던 경북체중으로 신종훈을 전학시켰다. 경북체고로 진학한 후 1학년 때 전국체전 동메달을 시작으로 출전했던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신종훈의 빠른 발을 이용한 아웃복싱 스타일을 당해낼 경쟁자가 국내에선 없었다.
어머니 엄씨는 신종훈에게 어릴 때 물질적으로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해주고 싶어도 먹고 살기가 팍팍했다. 33㎡(약 10평) 남짓 한 방 2개짜리 월셋집(월 15만원)에서 여섯 식구가 옹기종기 살았다. 아들이 복싱 선수가 되고 난 후에도 가끔 집에 오면 엄씨는 몸보신 차원에서 삼계탕을 끓여주었다. 좀더 좋은 걸 먹이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아들아, 링에서 맘껏 즐겨라"
신종훈은 사각의 링에서 물만난 제비 처럼 성장했다. 고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됐다. 고교 졸업 이후 돈을 벌기 위해 2008년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아들은 그동안 고생한 어머니에게 직장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엄씨는 그날로 TV 부품 공장을 다지 않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2009년 밀라노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 지난해 바쿠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다. 우승을 기대했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8강에서 무너졌다.
그는 올초 좋은 대우를 받고 인천시청으로 팀을 옮겼다. 부모를 위해 구미 상모동에 115㎡(35평) 규모 빌라를 장만했다. 구미시 쓰레기 수송 차량을 운전하는 아버지에겐 승용차도 선물했다. 엄씨는 "아들이 집 살 때 우리 집은 식구가 많으니까 꼭 화장실이 2개 달린 걸로 하자고 했을 때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신종훈은 2년 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자신했다가 예선 탈락으로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엄씨는 아들이 국내에서 치른 결승전을 한 경기만 빼고 모두 직접 경기장에 가서 봤다. 그때마다 신종훈은 우승했다. 직장일 때문에 못갔던 한 경기에선 신종훈이 준우승했다. 그래서 엄씨는 아들의 첫 올림픽 도전을 현장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아, 내가 설령 런던에 못가더라도 사각의 링에서 열심히 즐기고 와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