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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90㎏이하급에서 연장 끝에 골든스코어로 기적같은 금메달을 따낸 송대남(33·남양주시청). 그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주변을 둘러봤다.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소란죄(?)로 결승에서 퇴장당했던 정 훈 남자유도 대표팀 감독이었다. 그 순간 경기장 밖에서 몰래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정 감독이 뛰어오는게 보였다. 송대남도 그를 향해 뛰었다. 감격스러운 뜨거운 포옹이 이어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두 남자는 곧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절을 했다. 관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지만 예정에 없던 맞절에 어리둥절해 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제지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맞절이 런던 하늘 아래에서 연출된 이유는 이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송대남은 정 감독의 막내 처제의 남편이다. 중매를 선 이가 바로 정 감독이었다. 제자는 동서가, 스승은 형님이 됐다.
정 감독이 송대남을 만난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뒤 잠시 도복을 벗었다가 선수촌에 복귀한 송대남을 만났는데 그의 성실함이 정 감독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이 서른의 노총각을 곱디 고운 막내 처제에게 소개시켜줄 정도로 믿음이 컸다.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송대남은 처제의 마음도 3개월 만에 사로잡더니 2009년 11월 28일 결혼에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2010년 말 송대남은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해 은퇴기로에 섰다. 체중이 불어 운동이 쉽지 않았다. 그때 송대남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형님' 정 감독이었다.
81㎏급에서 90㎏급으로 체급을 변경하는 도박을 감행한 것도 이때다. 이후 정 감독은 더 혹독하게 그를 훈련 시켰다. 가족이, 제자가 꿈인 올림픽 무대에 서는 모습을 정 감독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살을 찌게 하기위해 매몰차게 먹였다. 하루 다섯끼 식사는 기본이었다. 매끼마다 나오는 스테이크 10장에 야식으로 라면 3개은 옵션이었다. 찐 살을 근육으로 바꾸기 위한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함께 병행시켰다. 평소 휴식도 훈련이라는 생각에 휴식과 훈련을 칼같이 구분하는 정 감독이지만 야간 훈련을 자청하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정 감독은 "사실 대남이가 나한테 욕도 많이 먹고 혼도 많이 났다. 결혼 한 뒤 처자식이 생기면서 압박감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매일 밤 11~12시까지 죽으라 연습하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정 감독의 송대남의 손이었고 발이었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전술을 송대남은 매트위에서 몸으로 옮겼다. 런던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송대남은 도복을 고쳐 입을 때마다 매트 옆 정 감독의 지시를 받았다. 말보다 행동이었다. 정 감독은 직접 몸으로 자세를 설명했고 그때마다 송대남은 스코어를 내며 결승까지 승승장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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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은 마지막 고비였다. 송대남은 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엑셀에서 열린 90㎏이하급 결승에서 세계랭킹 4위 곤잘레스 애슐리(쿠바)를 맞았다. 가장 아찔했던 상황은 상대의 공격이 아니라 정 감독이 퇴장 당한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심판은 정 감독을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퇴장시켰다. 정 감독은 퇴장 순간까지도 업어치기 모션을 취하며 송대남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결국 송대남은 연장전(골든스코어)가 시작되자마자 기습적인 공격을 성공시키며 금메달을 따냈다. 금메달을 딴 뒤 둘은 정 감독의 퇴장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날개 하나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송대남)" "팔이 하나 잘려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정 훈 감독)" 누가 가족이 아니랄까봐 마음까지 통했다.
33세 늦깍이에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선 송대남은 2일 열린 인터뷰에서 "다들 유도선수로 내 나이가 환갑이라고 한다. 선후배들 중에 '그 나이까지 유도하냐, 그만하라'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만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온 것이 금메달까지 따게 된 원동력 같다"고 밝혔다. 이어 "나게네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마지막 시합이니 정말 후회없이 하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형님' 정 감독이 퇴장당하면서까지 내린 업어치기는 '동서' 송대남이 받은 마지막 지시였다. 이들이 함께 흘린 땀은 한국 유도 사상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꽃으로 승화됐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