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박태환 '포레스트검프'처럼 좌충우돌 희한한 올림픽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8-01 14:22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열기 전까지는 뭘 집을지 알 수 없지." 아이큐 75 포레스트 검프의 좌충우돌 인생을 다룬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다.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올림픽이다. 15세에 첫 출전한 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탈락하는 쓰라림을 맛봤고, 19세에 다시 도전한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사상 첫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1 은1을 따내며 세계 수영계에 박태환 시대를 알렸다. 스물세살 박태환(SK텔레콤)의 생애 세번째 런던올림픽은 희한했다. 해피엔딩만을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렸던 4년의 땀방울은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에 발목을 잡혔다. 1997년 공식대회 출전 이후 15년간 단 한번도 겪지 않았던 희한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자유형 400m 실격과 실격 번복

자유형 400m 시작은 깔끔했다.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경기 종료 후 DSQ(disqualified, 실격) 사인이 떴다. 스타트대를 주시하던 캐나다 심판이 박태환이 정지 동작에서 어깨를 움직였다고 꼬투리 잡았다. 이후 모든 것이 꼬여들기 시작했다. 완벽주의자 박태환은 두번 실수하지 않는다. 아테네에서 부정출발로 기회를 날린 후 절치부심했다. 스타트에서 최고의 자세와 반응속도를 자랑한다. 수만번의 스타트 연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4시간 후 실격 판정이 번복됐다. 대한수영연맹에 따르면 실격 번복은 25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깨를 움직인 행위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실격도 희한한 일이었지만, 실격 판정이 4시간만에 번복되는 일도 유례가 없었다. 박태환의 표현대로 '롤러코스터'였다. 오후 3시, 7시 40분 시작되는 결선행이 확정됐다. 박태환은 부랴부랴 몸을 풀기 시작했다. 4시간여의 막막한 기다림 속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낮잠도 자지 못했다. 자유형 400m 스타트를 앞둔 아들을 바라보며 박태환 어머니 유성미씨는 "한번 마음을 다친 직후라 어떨지 모르겠다. 스타트 할 때나 경기할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이 위축되지 않을까"라며 걱정했다. 쑨양에 비해 몸이 무거웠다. 자유형 400m 왕좌를 중국의 쑨양에게 내줬다. 힘들고 긴 하루의 끝에 눈물까지 쏟았다.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딸 때도, 로마에서 전종목 예선탈락 후 비난에 시달릴 때도 울지 않던 '강한 남자' 박태환이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 역시 처음이었다.

자유형 200m 생애 첫 공동 은메달

희한한 일은 자유형 200m에서도 이어졌다. 31일 오전 영국 런던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결승 레이스 직후 전광판을 본 관중들은 경악했다. 1분44초93, 3번 레인의 박태환과 4번 레인의 쑨양이 똑같이 터치패드를 찍었다. 초반부터 2위 다툼이 거셌다. 1분43초14의 야닉 아넬은 일찌감치 앞서나갔다. 박태환-쑨양-록티가 뜨거운 3파전을 벌였다. 마지막까지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경기였다. 박태환은 실격 해프닝으로 시끄러웠던 자유형 400m에서 막판 역전을 허용하며 쑨양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자유형 200m에서는 이를 악물었다. "누구를 이기자는 생각이 아니라 400m에서 내 수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200m에서 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결과는 마지막 100분의 1초까지 완벽히 똑같은 2위, 공동 은메달이었다. 박태환은 공동 은메달에 대해 "하나 둘 셋! 세고 일부러 맞추려 해도 안될텐데, 수영을 시작한 이후 같은 시상대에 둘이 오르는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기록경기인 수영은 대부분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이날 올림픽 2라운드에서 박태환과 쑨양은 거짓말처럼 비겼다. 올림픽 수영 역사상 타이 기록이 나온 건 총 8번이다. 은메달 타이기록은 이번이 최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다

자유형 200m 결승을 앞두고 박태환은 인터넷을 하다 자신의 5위를 예상한 도박사들의 베팅 기사를 봤다고 했다.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6등을 하든 7등을 하든, 절대 5등은 안한다"고 생각했단다. 지난 2번의 올림픽, 한번은 울었고 한번은 웃었다. 런던에선 운명의 장난 속에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실격 해프닝, 2연패 좌절 등으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세상이 바라는 대로, 운명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지막 5m를 남기고 온몸에 기가 다 빠져나갈 만큼 혼신의 역영을 펼쳤다. 도박사들의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남자 자유형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총출동한 최고의 격전지에서 올림픽 2회 연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선을 다한 레이스 후 박태환은 웃음을 되찾았다. 최선을 다한 후회없는 수영으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했다. 인생은 어떤 초콜릿을 집을지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초콜릿을 삼키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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